이라크 맘루크 왕조

이라크 맘루크 왕조(아랍어: مماليك العراق Mamālīk al-ʻIrāq)는 1704년부터 1831년까지 맘루크의 지배를 받았던 이라크를 말한다.

이라크 맘루크 왕조
مماليك العراق
Mamālīk al-ʻIrāq

1704년~1831년
맘루크 치하 이라크의 근사치 지도
맘루크 치하 이라크의 근사치 지도
수도바그다드
정치
정치체제파샤리크 (자치)
(1704년 ~ 1723년)
(1816년 ~ 1831년)
하산 파샤
다우드 파샤
역사
역사 
 • 왕조 설립1704년
 • 오스만의 정복1831년
인문
공용어이라크 아랍어, 오스만 터키어, 조지아어[1]
기타
현재 국가이라크 이라크

12세기 십자군 전쟁과 부족간의 전쟁으로 도시생활이 점점 붕괴되기 시작하더니 1258년 몽고의 침략으로 인해 도시생활이 완전히 붕괴되기에 이르렀고 이로 말미암아 부족간의 전쟁이 다시 발발하자, 잠잠하던 맘루크가 다시 일어났다. 18세기 초 맘루크는 오스만 제국과는 별도로 주권을 주장하였고 바스라에 거점을 잡은 것으로 시작으로 페르시아만에서 쿠르드 지역까지 이르는 메소포타미아 유역까지 세를 넓혔다.[2]

맘루크 왕조는 오스만 제국의 명령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사실상 독립적으로 이라크를 통치하였으며 지배자들은 주로 조지아 출신이었다. 이라크 맘루크 왕조는 1831년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의 마지막 지도자 다우드 파샤를 타도하면서 멸망하게 된다.[2][3][4]

역대 맘루크들 편집

맘루크들이 바스라바그다드를 통치했으며, 모술은 그 지역 유지 잘릴리 왕조이 다스렸다.[4]

하산 파샤 (1704년 ~ 1723년) 편집

1704년 하산 파샤 (조지아어: ჰასან ფაშა)는 가장 견고한 전제정치를 구축하였으며 또한 사파위가 붕괴할 때까지 오스만-페르시아 변경에서 안정된 체제를 유지했다.[5]

아흐메드 파샤 (1723년 ~ 1747년) 편집

하산 파샤의 아들인 아흐메드 파샤 (조지아어: აჰმედ ფაშა)는 강력한 조지아 맘루크를 양성해 이들을 전투병과 행정 관료로 기용했다.[5][6]

위대한 쉴레이만 2세 파샤 (1780년 ~ 1802년) 편집

위대한 쉴레이만 2세 파샤 (조지아어: სულეიმან ბუიუქი)는 법치주의를 도입했다.[2]

다우드 파샤 (1816년 ~ 1831년) 편집

다우드 파샤 (조지아어: დაუდ ფაშა)는 이라크 맘루크 왕조의 마지막 맘루크이며 중요한 근대화 계획에 착수해 운하를 정비하고, 산업을 일으키며, 군인 2만명을 훈련시키고, 인쇄를 시작했지만 1831년 대홍수와 전염병의 만연으로 바그다드가 황폐화됐다. 이는 오스만 제국이 다우드를 몰아내고 이라크 통치를 회복해 끝이 났다.[2][4]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Hathaway, Jane; Barbir, Karl (2008). The Arab Lands under Ottoman Rule: 1516-1800. Pearson Education. p. 96. ISBN 9780582418998.
  2. “이라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V)”. 2012년 3월 5일. 2015년 5월 22일에 확인함. 
  3. “몽골군을 격파, 이슬람 文明을 지켜낸 노예戰士들 이야기”. 2011년 2월 19일. 2015년 2월 4일에 확인함. 
  4. 공일주 (2006년 12월 30일). 《이라크의 역사》. 살림출판사. 29쪽. ISBN 9788952205933. 
  5. 최성권 (2012년 4월 20일). 《중동의 재조명》. 한울아카데미. ISBN 9788952205933. 
  6. 김정위. 《중동사》. 대한교과서. ISBN 9788937830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