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성 (1922년)

일본식 이름은 ヨンソン으로, 1922년에 일본(현 후쿠오카)에서 조선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의 군인이다. 실제 생일은 5월10일이라고 하나 당시 일본제국 소속 공무원의 실수로 신분판(현 신분증) 상에는 5월 1일로 표기되었다.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동고 진학 중에는 동급생을 폭행하거나 성추행 하는 등 불량한 행보를 보였다. 동고 졸업 이후 일제의 사상을 접하며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고, 결국 24세의 나이로 일본 산하 '조선탄압회'의 일원으로 임명되어 조선으로 파견되었다. 이후 꾸준한 친일행보를 통해 26세 경에는 일본제국 산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광복 이후 분노한 조선의 국민들에 의해 결국 종로 1가(세종대로~우정국로)에서 살해당하였다. 대표적인 친일반민족주의자로, 여러 관련 서적들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은 이용성의 대표적 친일행위들이다.

우정총국 사건에 가담하여 조선의 기밀문서를 약탈하였다.
당시 파주군(현 파주시)를 담당하며 세율을 80배 상승시켰다.(당시 1결당 세율은 1두였지만 80두로 인상)
조선의 대신들을 살해한 후 은폐하였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수장을 역임하여 740000명 이상의 조선인들을 일본의 탄광으로 강제 징용하는데 앞섰다.
파주군에서 열린 다수의 독립운동집회를 탄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