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립(李廷立, 1556 ~ 1595)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자정, 호는 계은, 본관은 광주이다. 이덕형, 이이첨의 일족이었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대제학 등을 지냈다. 이이의 추천으로 이덕형·이항복과 함께 경연에서 《통감강목》을 강의하여 ‘3학사’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그 후 병조참판·한성부 좌윤·대사성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예조참의로 피난가는 선조를 호종하다가 행차가 금교역(金郊驛)에 이르렀을 때에 선조에게, 종묘와 사직의 위판(位版)이 지금 개성에 남아 있다고 아뢰니 선조가 크게 놀라면서 즉시 가져올 것을 명하였다. 주변의 반대에도 그는 급히 개성으로 달려갔다. 이때 사람들이 모두 “이미 적장이 와 있으니 죽음이 있을 뿐이다.”고 말렸으나, 죽음을 무릅쓰고 홀로 성에 들어가 종묘사직의 위패를 반출하여 평양으로 모셔갔다.

저서로 《계은집》이 있다. 죽은 후 의정부 영의정추증되었다.

저서편집

  • 《계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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