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제1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편집

1947년 영국에서 분리독립한 양국은 당초부터 대립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1948년에 북서부의 카슈미르 지역의 영유권을 놓고 무력 충돌로 발전했다. 그러나 유엔의 중재로 휴전하였고, 그 때의 정전선에 의해 카슈미르가 분할되었다. 이것을 제1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이라고 한다.

제2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편집

1965년에 다시 카슈미르 지방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인도 서부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무력 충돌로 발전하면서, 두 번째 전쟁이 발발했다. 이것을 제2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이라고 하며, 이듬 해 1966년 소련의 중재로 휴전을 하게 되었다.

제3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편집

벵골 지방무슬림에 의해 동파키스탄이 세워졌지만, 정치적 실권을 모두 서파키스탄(현재 파키스탄)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1970년 사이클론에 의해 동파키스탄 국토의 대부분이 수몰되어 30만에서 50만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기록하자, 서파키스탄에 위치해 있던 중앙 정부의 태만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때문에 동파키스탄에서 독립 운동이 벌어졌고, 그 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파키스탄군이 진압을 시작했다. 그러자 동파키스탄에서 많은 난민이 발생하여, 인도에 유입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인도에 대량의 난민을 떠안을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인도는 동파키스탄 독립을 위해 개입하였고, 1971년에 세 번째 전면전이 발발했다. 이것을 제3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이라고 한다. 인도는 압도적인 인원으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고, 주요 전선에서 멀었던 파키스탄은 패배를 하면서 동파키스탄은 1971년 12월, 방글라데시로 독립하게 되었다.

카르길 전쟁편집

1999년에 카슈미르의 카르길 지역에서 파키스탄군과 카슈미르의 반대로 인도 정부 활동가들이 관리 라인(휴전선)을 넘어 인도 군단 주둔지를 점령하고 양군이 충돌했다. 이것을 카르길 분쟁이라고 한다.

편집

인도는 1950년대 이후, 파키스탄 외에도 중화인민공화국과도 대립하였고, 중국이 1964년 핵실험을 성공하자[1] 인도는 궁지에 빠졌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소련과 대립한데다가 미국과도 대립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핵을 속속 배치했지만, 인도 국경 부근에 배치했다는 의심을 샀다. 따라서 인도는 1974년[1] 5월 지하 핵 실험을 실시하였고, 핵 보유를 선언하여 세계에서 여섯 번째 핵보유국이 되었다. 이후 파키스탄 역시 핵 실험을 실시하여[1], 세계에서 일곱 번째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각주편집

  1.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핵무장을 했을까?”. 《BBC》. 2017년 10월 5일. 2018년 7월 2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