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억령
임억령(林億齡, 1496년 2월 29일(음력 2월 16일)~ 1568년 4월 6일(음력 3월 9일)[1])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본관은 선산, 자는 대수(大樹), 호는 석천(石川)이다. 해남 출신이며, 박상의 문인이다.[1]
생애
편집임득무(林得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수(林秀)이고, 아버지는 임우형(林遇亨)이며, 어머니는 박자회(朴子回)의 딸 음성 박씨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박상 형제에게 글을 배웠다.[1] 1516년(중종 11년) 전체 4위로 진사가 되었고,[2] 1525년(중종 20)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9위, 전체 29위로 급제하였다.[3] 그 뒤 부교리·사헌부 지평·홍문관 교리·사간·전한·세자시강원설서 등으로 일했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 때 금산군수로 있었는데 동생 임백령(林百齡)이 소윤 일파에 가담하여 대윤의 많은 선비들을 추방하자, 자책을 느끼고 벼슬을 사퇴하였다.[4] 백령이 원종공신의 녹권(錄券)을 보내오자 격분하여 이를 불태우고 해남에 은거하였다.[5]
을사사화가 지나간 뒤인 1552년에 동부승지·병조참지를 역임하고, 이듬해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557년 담양부사를 역임했다.[1]
저서로 《석천집》이 있다.
전기 자료
편집- 박세채, 《남계집·속집》 권22, 강원도 관찰사 임 공 묘표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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