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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련(任用璉[1], 1901년 ~ ?)은 미술가로 오산학교의 미술교사로 재직하였다.[2]

생애편집

임용련은 배재고보 재학 중 3·1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가 수배령이 내려 만주를 거쳐 상해로 갔다. 중국인 '임파'로 여권을 만들어 미국으로 시카고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에 3학년으로 편입하여 드로잉과 유화를 전공했다. 수석졸업하여 1년 유럽미술여행 장학금을 부상으로 받았다. 유럽미술여행 중 프랑스에서 미술을 배우던 화가 백남순을 만나 1930년 4월 결혼하였고 프랑스에서 여러 미술전에 출품하였다. 1930년 7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으로 귀국하였다.[3]

1931년부터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미술과 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이중섭과 문학수 등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그는 8·15 광복 후 살고 있던 평북 정주에서 서울로 옮겨와 서울 세관장으로 일했다. 한국전쟁시기 서울이 점령된 후 북한군에게 끌려간 이후로 소식을 알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그의 작품인 <에르블레의 풍경>과 <금강산 만물상>이 소장되어 있다.

각주편집

  1. 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이중섭 스승, 임용련의 연필그림, 한겨레신문
  3. “월간미술 작가소개”. 2016년 12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11월 2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