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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파

(입체주의에서 넘어옴)
서양미술
분야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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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파 또는 큐비즘(Cubism)은 20세기 초에 프랑스에 일어난 서양미술 표현 양식의 하나를 일컫는다. 입체주의라고도 한다.

유래편집

 
후안 그리스 (Juan Gris)작 '피카소 초상'(1912,유화)

큐비즘이라는 낱말이 처음 쓰여진 동기는 조르즈 브라크풍경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 브라크는 프랑스의 남쪽 지중해 연안 지방 레스타크 (L'Estaque)에서 사생을 하면서 풍경화를 그렸으며 이 풍경화를 두고 비평가는 입체적 희한함 (bizarreries cubique) 이라고 풍자하였으며, 이 낱말에서 후에 브라크의 표현 양식을 본 딴 그림들 및 화가들의 경향을 큐비즘이라 부르게 되었다.

브라크는 레스타크 지방의 풍경화를 그리면서 대상을 입체적 공간으로 나누어 여러가지 원색을 칠하여 자연을 재구성 하였다. 이와 같은 실험적인 공간 구성과 대상의 표현 양식에서 출발하여 브라크는 점차 눈에 두드러진 입체적인 형태, 원통형, 입방형, 원추형 따위를 종래의 선이나 면을 대신한 표현 수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브라크가 추구한 입체적 표현 양식은 자연 대상을 순수한 그림 대상으로 완전히 전환시키는 것이었다.이러한 입체주의 작품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사물을 해체 했다 다시 조화롭게 접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래서 어떻게 화면을 아름답게 분해 할 것인가 하는것 이 중요했다

역사편집

초기 큐비즘편집

세잔은 화가가 빛의 속임수를 그리고 현상을 모사(模寫)하는 데 불과한 것을 불만으로 여겨 더욱 항구적인 자연을 그리려고 부심하였다. 피카소가 세잔을 본따서 흑인조각에서 자극을 받아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린 것은 1907년의 일이다. 같은 무렵에 포비슴의 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브라크는 세잔의 '모든 자연은 원추(圓錐)와 원통(圓筒)과 구체로 환원된다'라고 말한 내용의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1907년에 공표되었다)의 그 구절에 따라 <에스타크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1908년 이 풍경화 6점은 살롱 도톤에 출품하여 결국 낙선이 되었으나 그 때의 심사위원인 마티스가 '이 그림은 작은 퀴브(입방체)로써 그려졌다'라 평한 말이 퀴비슴의 명칭을 만든 실마리가 되었다. 브라크의 낙선작품은 화상(畵商)인 칸와이러의 화랑에서 개인전으로 발표되었는데 그 화상이 피카소와 브라크가 추구하는 공통점을 인정하여 1907년 가을에 두 사람을 만나게 하였다. 그 후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협력관계가 맺어져 1910년까지 퀴비슴은 전적으로 이 두 사람이 추진한 바가 되었다.

분석적 큐비즘편집

1910년부터 1912년에 걸쳐 퀴비슴은 새로운 발전의 단계를 맞이한다. '분석적 퀴비슴'이라 불리는 시기로 대상의 분해가 철저하게 행하여졌다. 대상은 여러 각도에서 고쳐 보게 되며 갖가지의 모습이 동일 화면으로 재구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 시기의 피카소는 거의 색채를 쓰지 않고 '외과의사가 시체를 해부하는 것처럼'(시인 아폴리네르의 논평) 형태의 분석과 그 질서 있는 배합을 추구하였다.

종합적 큐비즘편집

다음 1913∼1914년에 이르면 '종합적 퀴비슴'의 시기에 들어간다. 이것은 주로 피카소와 후안 그리스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는데 분석적 퀴비슴이 해체와 재구성의 사이에서 잃어버린 리얼리티를 되찾으려는 동향이었다. 분석적 퀴비슴은 병(甁)이란 대상에서 원통형을 추출(抽出)하지만, '나는 원통형에서 병을 만든다'라 말하는 것이 그리스의 입장이었다. 촌단(寸斷)된 색면의 통합과 기하학적 질서에 의한 장식효과의 증대를 가져 왔으며, 또한 리얼리티 회복이란 요구에 응하여 콜라주와 파피에 콜레의 수법이 개척된 것을 특기할 수 있다.

다이내믹 큐비즘편집

피카소가 주도하던 전통적 퀴비즘과 별도로 거의 1910년경부터 레제를 중심으로 개척된 방향으로 다이내믹 퀴비슴이 있다. 이것은 대상을 분해하여 재구성할 때에 화면에 역동감(力動感)을 도입하려는 것이며, 주로 정물의 분야에서 성과를 올린 정통파 퀴비슴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려고 시도하였다.

큐비즘의 화가들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