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왕후
자의왕후 김씨(慈儀王后 金氏, ? ~ 681년[1])는 신라의 제30대 왕인 문무왕의 왕비이다. 아들은 신문왕이며, 아버지는 파진찬 김선품이다. 자눌왕후(慈訥王后)라고도 한다. 진흥왕의 증손녀이다.
생애편집
자의왕후는 파진찬 김선품의 딸이다. 김선품은 진흥왕과 사도왕후의 아들인 구륜공과 진평왕과 미실의 딸인 보화공주의 소생이다. 자의왕후의 어머니는 이화랑과 숙명공주의 아들인 보리공과 정숙태자와 만호태후의 딸인 만룡낭주의 소생인 보룡궁주이다.
- 진흥왕 +사도왕후= 구륜공/진평왕+미실=보화공주===> 김선품
- 이화랑+숙명공주(지소태후+이사부)=보리공/정숙태자(진흥왕+숙명공주)+만호태후(지소태후+이화랑)=만룡낭주===>보룡궁주
어렸을 때 부친 김선품이 사망하여 어머니인 보룡궁주가 김춘추 집안의 유모가 되었다. 이에 김춘추의 장남인 법민과 인연을 맺어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고 김법민이 태자로 책봉 될 때 그녀 또한 태자비로 책봉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자의왕후의 동생인 야명부인도 문무왕의 후궁으로 입궐하여 인명전군을 낳았다.
자의왕후는 문무왕과의 사이에서 소명태자와 훗날 신문왕이 되는 정명태자를 낳았다. 문무왕 말기에 정명태자의 장인인 김흠돌(金欽突)이 정권을 장악하여 대립하였다. 신문왕 원년(681년)에 김흠돌이 야명궁주 소생인 인명전군을 앞세워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여 김흠돌을 비롯하여 흥원(興元), 진공(眞功 - 제26대 풍월주), 흠돌의 아들인 흠언(金欽言, 제31대 풍월주), 진공의 아들인 신공(信功 - 제32대 풍월주)와 군관공, 인명전군을 처형하였다. 이들이 대부분 화랑도 출신이므로 그녀는 화랑도를 일시 폐지 시키고 이에 소속된 자들을 병부에 소속시키나, 지방까지는 미치지 못하자 다시 부활시켜 풍월주와 국선 이원체제가 아닌 국선 일원체제로 운영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김흠돌 세력의 반란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병을 얻어 문무왕이 붕어한 지 몇 달도 안 되어 서거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선대편집
- 조부 : 김구륜 (金仇輪) - 진흥왕(眞興王)과 사도왕후(思道王后)의 아들
- 조모 : 보화공주 김씨(寶華公主 金氏) - 진평왕(眞平王)과 미실궁주(美室宮主)의 딸
- 아버지 : 김선품(金善品) - 제 21대 풍월주
- 외조부 : 보리공 (菩利公) - 이화랑(二花郞)과 숙명공주 김씨(叔明公主 金氏)의 아들이자 제 12대 풍월주
- 외조모 : 만룡낭주 김씨(萬龍娘主 金氏) - 정숙태자(貞肅太子)와 만호태후 김씨(萬呼太后 金氏)의 딸
- 외숙부 : 예원공(禮元公) - 제 20대 풍월주
- 어머니 : 보룡궁주 김씨(寶龍宮主 金氏) - 선품공이 사망하자 김춘추의 집안의 유모로 들어갔다.
형제, 자매편집
인척편집
자의왕후가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 ↑ 박영규 저, 한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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