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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한기르(1356년 경 ~ 1376년 경)는 티무르의 아들이다. 일반적으로 그는 티무르의 장남이라 소개되나[1][2], 그가 차남이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3].

자한기르 미르자 1세
출생1356년?
사망1376년?
사마르칸드
성별남성
국적티무르 왕조
종교이슬람교
부모티무르
배우자세빈 벡
자녀무함마드 술탄, 피르 무함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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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년, 당시 티무르와 갈등관계였던 화레즘의 군주 유수프 수피는 그의 딸 세빈 벡을 자한기르와 결혼시킴으로써 우호관계로 돌아왔다[4]. 자한기르는 이 결혼을 통해 칭기스 가문의 여인과 결혼한 사람만이 사용하는 칭호인 구르칸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5] 자한기르는 세빈 벡과의 사이에서 아들 무함마드 술탄을 얻었다. 무함마드 술탄은 자한기르가 자유인 여자의 몸에서 얻은 유일한 자식이다.[6]

1374년 ~ 1375년, 자한기르는 티무르의 원정에서 한 군단을 이끌기 시작했다.[7]. 그러나 그는 1375년에 티무르가 시작한 모굴리스탄 칸국 원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자한기르는 대신 사마르칸드에 남아 티무르를 대신했다. 1375년 혹은 1376년, 티무르가 돌아오기 직전에 자한기르는 20살의 나이로 죽었다.[8] 자한기르가 죽은지 40일이 지나서 그의 아들 피르 무함마드가 태어났다.[8]

자한기르가 죽은 뒤에 그의 첫째 부인 세빈 벡은 그의 동생인 미란 샤와 결혼했다.[9]

자식들편집

  • 무함마드 술탄: 자한기르가 세빈 벡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8]. 티무르는 무함마드 술탄을 자신의 후계자로 세웠다[6]. 그러나 티무르보다 일찍 죽었다.
  • 피르 무함마드: 자한기르가 바흐티물크 아가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8]. 티무르는 죽기 직전 피르 무함마드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정했다.

각주편집

  1. 르네 그루세, 1998, p.641.
  2. 호리카와 토오루, 2005, pp.254-55.
  3. B. F. Manz, 1989, p.185의 24번 각주.
  4. 르네 그루세, 1998, pp.592-93.
  5. V. V. Barthold, 1956, p.33.
  6. B. F. Manz, 2007, pp. 16-17.
  7. B. F. Manz, 1989, p.77.
  8. Mirza Muhammad Haidar Dughlt, 2008, p.48.
  9. B. F. Manz, 2010.

참고문헌편집

  • 호리카와 토오루. (2005). 몽골 제국과 티무르 제국.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193 - 275. (고마츠 히사오 외, 씀, 이평래, 옮김). 서울: 소나무. (원서출판 2000).
  • 르네 그루세. (1998).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김호동·유원수·정재훈, 옮김). 파주: 사계절 출판사. (원서출판 1939).
  • B. F. Manz. (1989). The rise and rule of Tamerlan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B. F. Manz. (2007). Power Politics and Religion in Timurid Ira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B. F. Manz. (2010). Ḵalil Solṭān b. Mirānshāh b. Timur. In Encyclopaedia Iranica, Online Edition. Retrieved from [1].
  • V. V. Barthold. (1958). Four studies on the history of Central Asia, vol.II. (V. and T. Minorsky, tr.). Leiden: Brill Archive.
  • Mirza Muhammad Haidar Dughlt. (2008). A History of the Moghuls of Central Asia:The Tarikh-I-Rashidi. (N. Elias and Sir E. Denison Ross, tr.). New Tork: Cosimo,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