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張導, ? ~ ?)는 중국 후한 말기의 관료로, 경명(景明)[1]이며 하내군 수무현(脩武縣) 사람이다.[1]

생애 편집

광화 3년(180년), 거록군의 장수(漳水)가 나루터에서 범람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거록태수 장도는 지도를 보면서 물의 흐르는 방향과 굴곡을 조사하여 승(丞) 팽참(彭參)·연(掾) 마도숭(馬道嵩) 등과 함께 제방을 쌓아 물의 흐름을 바로잡았다. 이는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장도의 이 업적은 《장하신단비》(漳河神壇碑)에 기록되었다.[1]

이후 산동(山東)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장도는 맹약을 맺는 의식으로써 단상에 올라가 피를 마셨으며 이후 원소를 섬겼다.

초평 2년(191년), 순심·고간·곽도·신평 등과 함께 한복을 설득하여 기주를 원소에게 넘겼다.

훗날 장도는 헌제를 알현하고 작위를 수여받았다. 이 일로 장도는 원소의 미움을 사 자기 자신은 물론 일가족이 모두 처형당하였다.[2]


각주 편집

  1. 역도원, 《수경주
  2. 이 무렵 원소는 헌제를 동탁이 옹립한 괴뢰로 규정하여 황실과 대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