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삼
장명삼(張明三[1], 1963년 5월 16일 ~ 2012년 4월 23일)은 대한민국의 태권도 선수, 지도자였다. 고등학교 시절인 1982년에 선수권 대회에 페더급으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은퇴 후 일본 태권도 국가대표팀 코치를 한적이 있으며, 경기도 광주시에서 외국 태권도 선수들을 지도했다. 2012년 자택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태권도 발전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사후 6단에서 7단으로 승격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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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사망일 | 2012년 4월 23일 | (48세)|||
학력 | 경희대학교 | |||
스포츠 | ||||
국가 | 대한민국 | |||
종목 | 태권도 | |||
체급 | 페더급 | |||
단수 | 7단 | |||
선수활동 | 1982-1989 | |||
코치 | 일본 국가대표 | |||
성적 | ||||
올림픽 | ×1 (시범종목) | |||
세계선수권대회 | ×1 | |||
선수 경력
편집초등학교 시절부터 태권도를 하였으며[2], 동성고등학교 재학 중인 198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페더급(-60kg)으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1] 9월에는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도 출전하였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해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여받았다.[3] 1984년[4]주 1, 1988년 대회에도 참여하여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총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88년 하계 올림픽 태권도 시범종목에도 페더급으로 참가하여 우승하였다.[5] 1989년 6월 대통령기대회 이후 은퇴하였다.[2]
지도자 경력
편집1992년까지 국기단원 소속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일본 태권도 협회의 초청으로 일본 국가대표팀 코치를 하였다.[2] 코치 자격으로 1992년 하계 올림픽에도 참가하였다.[6] 이후 미국에서 태권도 지도를 하였고, 고향인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광주시에서 외국인 선수를 지도하였다.[2]
학력
편집기록
편집대회 | 날짜 | 장소 | 세부 종목 |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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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1982년 3월 1일 | 과야킬 | -60kg급 |
대회 | 날짜 | 장소 | 세부 종목 |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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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 1986년 7월 5일 | 콜로라도스프링스 | -60kg급 | |
1987 | 1987년 5월 19일 | 헬싱키 | -60kg급 |
대회 | 날짜 | 장소 | 세부 종목 |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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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1982년 12월 10일 | 싱가포르 | -60kg급 | |
1984 | 1984년 11월 12일 | 마닐라 | -60kg급 | |
1988 | 1988년 3월 24일 | 카트만두 | -60kg급 |
수훈
편집- 체육훈장 백마장(1982년 12월 22일)
각주
편집- 참조주
- ↑ 가 나 “世界 태권도 한국 5連覇”. 《동아일보》. 1982년 3월 1일. 2020년 7월 6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라 마 김창완 (2012년 5월 3일). “'불운의 스타’ 장명삼 교통사고로 타계”. 《태권도신문》. 2020년 7월 6일에 확인함.
- ↑ “스포츠 有功者”. 《메일경제》. 1982년 12월 28일. 2020년 7월 6일에 확인함.
- ↑ “韓國 태권도 宗主國과시”. 《메일경제》. 1984년 11월 13일. 2020년 7월 9일에 확인함.
- ↑ 올림픽 위원회 공식 프로필
- ↑ “日팀 한국인코치 눈길”. 《경향신문》. 1992년 7월 21일. 2020년 7월 6일에 확인함.
- 내용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