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식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장우식(張祐植, 1914년 1월 18일 ~ 1971년)은 일제강점기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평안북도 신의주시 출신[1][2]이다.
일본 메이지 대학 예과에 재학 중이던 1935년 1월 25일 일본 빙상 선수권에 출전해, 10,000m는 19분 9초 6로 2위, 5,000m는 9분 16초 5로 4위를 기록해 상위권에 들었다.[3]난도 구니오, 나카무라 다이키치와 함께 올림픽 보궐 대표선수로 선정되었다.[4] 이후 자비 참가를 조건으로 1936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0m에서 27위, 10000m에서 26위에 그쳤으나 개인 최고 기록은 경신하였다.
올림픽 이후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정확한 사망 시점도 불명확하다. 한국 측 자료에서는 1971년[5]으로 되어 있고, 마라토너 손기정도 1976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 선수를 언급하며 "(그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인생이 허무하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6] 그러나 일본 측 자료에서는 1988년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르포라이터가 인터뷰를 청했으나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7]
각주
편집- ↑ 선수생활 당시 신문기사와 일본측 자료 기준
-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21년 9월 6일에 확인함.
-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21년 9월 6일에 확인함.
-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21년 9월 6일에 확인함.
- ↑ 이태신. 《체육학대사전》 (2000). 민중서관.
-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21년 9월 6일에 확인함.
- ↑ 鎌田忠良『日章旗とマラソン』講談社《講談社文庫》、1988年、p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