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문
장윤문(張允文: 1139년~1211년 12월 31일(음력 11월 25일))은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목주다.[1] 우방재의 딸이 장윤문의 아버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장린(張麟)과 결혼했으므로 우학유가 외삼촌이다.
이력
편집- 1139년(인종 17): 태어남.
- 외할아버지의 음서로 관직 생활을 시작함.[1]
- 동도서기(東都書記)로 재직했는데 인사 고과에서 높은 평가(最)를 받아 식목녹사(拭目錄事)로 임명받음.[1]
- 1186년(명종 16): 어떤 사람이 탐라(제주)에 반란이 일어났다고 보고했으나 사실이 아님이 밝혀짐. 하지만 조서를 내린 뒤였으므로 장윤문은 대부주부 행탐라현령(大府注薄 行耽羅縣令)으로 재직함.[2]
- 제릉승 겸 도병마녹사(諸陵丞 兼 都兵馬錄事), 중서주서(中書注書), 권지합문지후(權知閣門祗候), 감찰어사(監察御史), 추부원외랑(秋部員外郞), 충청도점군사(忠淸道點軍使), 기거사인(起居舍人), 경상주도염안사(慶尙州道廉按使), 우사낭중(右司郞中), 소부소감(少府少監) 등 여러 관직을 지냄.[1]
- 1198년(신종 1): 숙직관을 대상으로 하는 공억을 금지하자고 했으나 시행되지 않음.[3]
- 1202년(신종 5): 음력 10월, 탐라(제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안무사로 나감.[4] 음력 12월, 반란군들을 처형함.[5]
- 1203년(신종 6): 시대부경 우간의대부 지제고(試大府卿 右諫議大夫 知制誥)로 임명받음.[6]
- 희종이 즉위하자 국자감 대사성으로 임명받음.[1]
- 1207년(희종 3): 음력 5월, 국자감시를 주관해 김남석(金南石), 권시위(權時偉) 등을 뽑음.[7] 나이가 많음을 까닭으로 관직에서 완전히 물러남.[1]
- 최당(崔讜: 1135년~1211년) 형제 등과 함께 기로회(耆老會)를 조직함.[1]
- 1211년(희종 7): 사망. 향년 일흔세 살.[1]
가족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장윤문 묘지명〉
- ↑ 《고려사》 권20, 〈세가〉20, 명종 16년(1186년) 7월 9일(갑신)
- ↑ 《고려사절요》 권14, 신종 1년(1198년) 12월
- ↑ 《고려사》 권21, 〈세가〉21, 신종 5년(1202년) 10월
- ↑ 《고려사》 권21, 〈세가〉21, 신종 5년(1202년) 12월 5일(을해)
- ↑ 《고려사》 권21, 〈세가〉21, 신종 6년(1203년) 12월 24일(무오)
- ↑ 《고려사》 권74, 〈선거지〉2, [과목]2, 국자감시의 정원, 희종 3년(1207년) 5월
- ↑ 참고로 여씨(余氏) 가운데 현존하는 본관은 의령 하나뿐이지만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 말고도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