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문

장윤문(張允文, 1138년 ~ 1211년)은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목주(木州)이다.

생애편집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를 지낸 외할아버지 우방재(于邦宰)의 음서(蔭敍)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동도(東都) 서기(書記)를 거쳐 1186년(명종 16) 7월에 합문지후(閤門祗候) 독고충(獨孤忠), 낭장(郞將) 지자심(池資深)과 함께 능견 7단을 하사 받고 식목록사(式目錄事)로서 대부주부(大府注簿) 탐라현령(耽羅縣令)으로 부임하였다.[1]

중서주서(中書注書), 감찰어사(監察御史), 충청도 점군사(忠淸道 點軍使), 경상주도 염안사(慶尙州道 廉按使) 등의 관직을 지냈다.[2]

1202년 10월에 소부소감(小府少監)으로 탐라(耽羅) 안무사(安撫使)가 되었다.[3]

1203년 12월 24일에 대부경 우간의대부 지제고(大府卿 右諫議大夫 知制誥)가 되었다.[4]

1207년(희종(熙宗) 3년) 5월에 국자감(國子監) 대사성(大司成)이 되어 사마시(司馬試)를 주관하였다.[5]

벼슬은 통의대부 국자감대사성 지제고(通議大夫 國子監大司成 知制誥)로 치사(致仕)하였다. 쌍명재(雙明齋) 최당(崔讜)의 형제들과 함께 기로회(耆老會)를 만들었다. 1211년(희종(熙宗) 7년)에 향년 73세로 별세하였다.[2]

가족편집

  • 할아버지 : 검교첨사(檢校詹事) 장선민(張先敏)
    • 아버지 :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장린(張麟)
  • 외할아버지 : 우방재(于邦宰)
    • 어머니 : 목천 우씨(木川于氏)
      • 부인 : 시태부소경(試太府少卿) 여시무(余時茂)의 둘째 딸
        • 자녀 : 1남 4녀

각주편집

  1. “고려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186년 7월 9일. 2017년 1월 13일에 확인함. 
  2. “장윤문묘지명(張允文墓誌銘)”.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1211년. 2017년 1월 13일에 확인함. 
  3. “고려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202년 5월 10일. 
  4. “고려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204년 1월 27일. 2017년 1월 13일에 확인함. 
  5. “고려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207년. 2017년 1월 1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