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지
전공지(田拱之, 미상 ~ 1014년 6월 21일(음력 5월 21일)[1])는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영광으로, 벼슬은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에 이르렀다. 승려 지겸(志謙: 1145년~1229년 7월 29일(음력 7월 8일)[2])은 그의 6대손이다.
이력
편집평가
편집외교문서를 잘 작성했으며 중앙과 지방의 벼슬을 지낸 이십여 년[8] 동안 근면하며 조신했다고 평가받았다.[4]
상훈과 추모
편집죽은 뒤에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추증되었다.[4]
전기 자료
편집- 《고려사》 권94, 〈열전〉7, 전공지
각주
편집- ↑ 가 나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5년(1014년) 5월 21일(병오)
- ↑ 이규보, 《동국이상국집·전집》 권35, 故華藏寺住持王師定印大禪師追封靜覺國師碑銘
- ↑ 이규보, 앞의 글에는 광종 때 일로 되어 있다.
- ↑ 가 나 다 《고려사》 권94, 〈열전〉7, 전공지
- ↑ 《고려사》 권55, 〈오행지〉3, [토행], 산붕(山崩), 목종 10년(1007년). 이 화산 폭발 기록의 해석은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고기원·전용문·박준범·박원배·문수형·문덕철, 〈제주도 화산활동에 관한 역사 기록의 이해(원제: Understanding of historical records about volcanic activities in Jeju Island, Korea)〉, 《지질학회지》 55-2, 대한지질학회, 2019년 4월.
- ↑ 《요사》와 《속자치통감》에는 모두 8월의 일로 적혀 있다. 《요사》 권15, 〈본기〉15, 성종(聖宗) 31년(1012년) 8월 24일(기미); 《속자치통감》 권30, 대중상부(大中祥符) 5년(1012년) 8월 24일(기미).
- ↑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3년(1012년) 6월 28일(갑자)
- ↑ 여기서의 '이십여 년'을 21~29년이라고 가정하고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한 해를 거꾸로 헤아리면 985년(성종 4)부터 993년(성종 12), 즉 성종 재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