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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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편집1062년(문종 16)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국자감시(國子監試)를 관장할 때 시험 답안지를 봉미(封彌)하는 법을 시행하자고 요청하여 처음으로 시작되었다.[1]
1069년(문종 23) 5월 상서좌승 우간의대부(尙書左丞右諫議大夫)를 거쳐 7월 서북면추동번병마부사(西北面秋冬番兵馬副使)가 되었다.[2]
1071년 한림학사가 되고, 1072년 지서북면추동번병마사(知西北面秋冬番兵馬使)가 되었다.
1073년 2월 섭형부상서(攝刑部尙書)를 거쳐 12월 예부상서가 되었다.[3]
1074년 4월 지공거(知貢擧)로서 윤관(尹瓘) 등을 선발하였다. 1075년(문종 29) 참지정사 감수국사(參知政事監修國史)가 되고, 이어 이부상서가 되었다.
1077년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순(貞順)이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