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程顥, 1032년~1085년 7월 9일(음력 6월 15일[1]))는 중국 송나라 도학의 대표적인 학자의 한 사람이다. 성리학과 양명학 원류의 한 사람이다.

자는 백순(伯淳), 시호(諡號)는 순공(純公). 명도 선생(明道先生)으로 호칭되었다. 대대로 중산(中山)에 거주하였으나 후에 하남(河南)에 이주하였다. 정이가 그의 동생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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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부친 향(珦)은 지방관이었을 당시 주돈이를 알아 명도, 이천 형제를 그에게 배우게 하였다고 한다. 진사에 급제한 후 지방관으로 활약하였다. 1070년 경에 여공저(呂公著)의 추천으로 중앙정부에 들어 갔다.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거론되자 의견을 달리하여 직을 떠나 지방관으로 지냈다. 그 성격은 온후관대하여 동생 이천이 이론적이며 준엄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명도 사상(明道思想)의 특색은 인설(仁說)·성론(性論)인데 그 기초가 되는 것은 역적 논리(易的論理)의 전개로서의 형이상적 사유이다. 그에 의하며 현상의 세계는 결국 음양 2기(陰陽二氣)의 대대(對待)에 의해 생성소멸하는 것으로 그것은 ‘자연적으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바로 (易)에 “1음 1양(一陰一陽), 이를 도(道)라고 한다”고 하는 도(道)이며, 천지만물의 이(理)나 도(道)는 사람에 있어 묵식심통(默識心通-사람의 마음에 개우쳐지는 것)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인설(仁說)은 이 논리를 기저로 하여 천지자연의 이(理)와 사람의 이(理-일반적인 性)와의 일체관에서 논술된다. 〈식인편(識仁篇)〉에서 “인(仁)은 혼연히 물(物)과 동체요 의례지신(義禮智信) 모두 인(仁)이다. 이 이(理)를 알아서 성경(誠敬)으로써 이것을 보존(存)할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인(仁)은 ‘저절로 그러한’ 천지만물의 이(理)·도(道)인 동시에 사람의 마음의 이(理)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인(仁)을 체득하면 이미 나는 천지만물과 일체요 일신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발전하여 성(性)은 곧 기(氣)요, 기(氣)는 곧 성(性)으로서 생겨나면서 지닌 그대로 성(性)이라고 하는 논리가 전개된다. 그의 〈진치법 10사(陳治法 十事)〉는 반신법당(反新法黨)의 처지에서 당시의 정치사회 상태를 잘 통찰하여 그 폐단을 찌른 예리한 정치 논문이다. 정호의 사상은 남송육상산을 거쳐서 왕양명의 사상으로 계승·전개된다. 어록·저술은 《2정전서(二程全書)》에 수록되어 있다.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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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전서(二程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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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정이 형제의 사상적 논술·문장 등을 수록한 것. 내용은 2정유서(二程遺書; 河南 程氏 遺書)·2정외서(二程外書; 河南 程氏 外書)·명도문집(明道文集)·이천문집(伊川文集)·이천경설(伊川經說)·이천역전(伊川易傳) 수언(粹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정자(二程子)는 송대 도학의 대표적 인물이어서, 주돈이, 소옹, 장횡거 등의 사상가가 각각 이색적인 사상의 소유자였음에 비하여 지극히 정통적으로 전통적 유학을 계승하여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정호 · 정이, 양자의 사상은 내용상 뉘앙스를 달리하며, 학문적인 관심과 방향에 있어서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그러나 유사한 점도 있다. 《2정전서》 속에는 명도의 말인지 이천의 말인지 판별되지 않는 말이 많이 보인다. 《전서》 속에서 사상면으로 특히 중요한 명도의 것은 〈식인편(識仁篇)〉, 〈정성서(定性書)〉등 〈명도어록(明道語錄)〉이며, 이천의 것에는 〈이천어록(伊川語錄)〉, 〈이천경설(伊川經說)〉, 〈이천역전(伊川易傳)〉이 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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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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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이, 《이천선생문집》 권7, 명도선생행장
  • 《송사》 권427, 열전186, 정호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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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이, 《이천선생문집》 권7, 명도선생행장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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