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사토 내각 (개조)

제3차 사토 개조내각(일본어: 第3次佐藤改造内閣)은 사토 에이사쿠가 제63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되어, 1971년 7월 5일부터 1972년 7월 7일까지 존재한 일본의 내각이다.

제3차 사토 개조내각
내각총리대신제63대 사토 에이사쿠
성립연월일1971년 7월 5일
종료연월일1972년 7월 7일
여당·지지기반자유민주당
내각각료명단 (총리대신 관저)

제3차 사토 내각개조내각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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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사토 개조내각은 사토 에이사쿠 정권의 마지막 개조 인사가 됐다. 이 내각에서의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 제1차 닉슨 쇼크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다음해에 방문한다고 돌연 발표했다.
  2. 제2차 닉슨 쇼크에 의한 브레튼 우즈 체제 종료와 더불어 달러=엔의 고정환율제(1달러 360엔)가 붕괴해 일단 변동 환율제로 이행하여 연말에 스미소니언 협정을 체결, 다시금 고정환율제로 돌아와 1달러 308엔이 됐다.
  3. 쇼와 천황·고준 황후유럽 순방(일본 역사상 처음이 되는 천황의 외유)을 가졌다(1971년 9월 27일 ~ 10월 14일).
  4. 제11회 동계 올림픽 삿포로 대회가 개최됐다(1972년 2월 3일 ~ 2월 13일).
  5. 아사마 산장 사건을 시작으로 하는 연합적군에 의한 일련의 테러·게릴라 사건이 발생했다.
  6. 미국에서 일본에 오키나와 제도의 시정권 반환(오키나와 반환 협정의 발효)이 성사됐다(1972년 5월 15일).

전후 최장이 되는 7년 8개월 정권의 마지막 내각이 됐지만 정계·국민 모두가 정권에 대한 식상함을 느끼고 있어서 구심력은 약해져 있었다. 1972년 6월 15일에 내각 불신임 결의가 부결됐지만 국회가 종료한 6월 16일 다음날 자유민주당 양원의원총회에서 내각총리대신 및 자유민주당 총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후임이 다나카 가쿠에이로 정해진 후 7월 7일에 내각 총사퇴를 했다. 내각 불신임안이 부결됐는데 22일 후에 총사퇴했고 이것은 불신임안 부결 → 총사퇴의 최단 기록이다. 1970년 10월에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4선으로 당선됐고 임기는 그해 10월까지 있었는데 원래 전임 총재인 이케다 하야토로부터 후계 지명을 받아 총리·총재가 된 사토 에이사쿠는 그 사이 후쿠다 다케오에게 양보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파벌(사토파)로부터 다나카 가쿠에이가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는 움직임이 가시화 되자, 후계자를 지명하는 일 없이 스스로 성사시켰던 오키나와 반환을 끝으로 물러났다.

각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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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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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내각의 정무 차관이 1971년 7월 9일부로 퇴임했고 같은 날에 신임 정무 차관을 임명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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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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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역대 내각        
전임 내각
 제3차 사토 내각 
 제3차 사토 개조내각 
 1971년 7월 5일 ~ 1972년 7월 7일 
후임 내각
 제1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