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전국체육대회 야구
1923년 전국체육대회 야구는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에서 개최된 1923년 전국체육대회의 경기 종목이다. 제4회 전조선야구대회로 개최되었으며 1923년 5월 17일부터 5월 19일까지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1]
1923년 전국체육대회 야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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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 |
개최국 | 일제강점기 조선 |
개최 도시 | 경기도 경성부 |
개최 기간 | 1923년 5월 17일 ~ 5월 19일 |
경기장 |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 |
세부 종목 | 2개 종목 (남자: 2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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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전국체육대회 야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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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부 | ||
남자 | ||
청년부 | ||
남자 |
대회 진행 편집
제4회 전조선야구대회는 1923년 5월 17일부터 사흘간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에 있는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1] 중학부 종목에는 배재고등보통학교, 오산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 청년학관, 휘문고등보통학교 등 5개 선수단이 참가했고, 청년부 종목에는 경성의학전문, 대구청년회, 배재청년단, 서울구락부, 세브란스의학전문, 중앙체육단 등 6개 선수단이 참가했다.[1][2] 중학부 종목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가 결승에서 오산학교를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고 청년부 종목에서는 중앙체육단이 결승에서 대구청년회를 17:11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1]
한편 청년부 종목의 중앙체육단과 배재청년단의 경기에서 3회 말 17:4로 앞서가던 중앙체육단의 공격 상황에서 배재 측 응원단이 중앙체육단의 선수의 언동을 문제삼아 소란을 피우는 일이 발생했다.[1] 이에 당시 경기 주심이었던 윤치영 심판은 중앙체육단의 주장 박석윤과 배재청년단의 감독 마춘식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지만, 양 선수단이 모두 심판의 퇴장 조치에 불복하고 경기장 내 소란 상황이 계속되었다.[1] 소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당시 심판은 배재 측 응원단의 소란이 더 심하다고 판단하고 배재 측 응원단에게 전원 퇴장 명령을 내리자, 이에 불복하여 배재청년단 측은 경기를 기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1]
경기 결과 편집
중학부 편집
준결승 | 결승 | |||||
오산학교 | 22A | |||||
중앙고등보통학교 | 11 | |||||
오산학교 | 3 | |||||
휘문고등보통학교 | 14A | |||||
휘문고등보통학교 | 16A | |||||
청년학관 | 0 | |||||
청년부 편집
준결승 | 결승 | |||||
중앙체육단 | 17 (기권승) | |||||
배재구락부 | 4 (기권패) | |||||
중앙체육단 | 17 | |||||
대구청년회 | 12 | |||||
대구청년회 | 17 | |||||
경성의학전문 | 2 | |||||
각주 편집
참고 문헌 편집
- 대한체육회 (1990). 《대한체육회 70년사》.
- 대한체육회 (2011). 《대한체육회 90년사》.
- “제4회 전국체육대회 야구 경기 결과”. 대한체육회.[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외부 링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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