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
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1594)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다. 성은 피에를루이지라고 하지만 보통 출신지인 로마 근교의 마을의 이름을 따서 팔레스트리나라고 부른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8/Giovanni_Pierluigi_da_Palestrina.jpg/220px-Giovanni_Pierluigi_da_Palestrina.jpg)
소년 시절 고향 마을의 산타가피터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에 들어가, 1537년에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의 성가대에 참가하여 기초 훈련을 받았다. 변성기(變聲期)에 다시 산타가피터로 돌아와서 오르간 주자 겸 노래 교사가 되었다. 1551년, 교황청의 줄리아 예배당의 악장에 임명되었고, 곧 교황의 예배당 가수가 되었다. 그러나 교황이 바뀌어 바오로 4세가 되자 아내가 있는 팔레스트리나는 해고되었다(1555). 그리하여 그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전 및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등에 근무했으나 1571년에는 다시 줄리아 예배당의 악장으로 초청되어 세상을 떠나는 해까지 이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1580년에 부인과 사별했고 한때 신부가 되었으나 곧 돈많은 미망인과 재혼하였고, 재정적 원조를 얻어 작품출판도 많이 하였다. 1586년 교황의 전속작곡가 칭호를 받은 팔레스트리나는 대음악가로 존경받다가 별세하였으며,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팔레스트리나는 약 105곡의 미사곡을 비롯하여 많은 모테토, 찬가 등의 종교 음악 외에 마드리갈 등의 세속곡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거의 무반주의 성악곡이며 4-5성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는 플랑드르 악파의 다성수법을 충분히 몸에 익히고 있으면서도 서정적인 표정을 잃지 않았고, 호모리즘풍의 양식도 채택하여 긴밀한 구성으로 맑고 깨끗한 음악을 만들었다. 그 종교음악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4)에 의하여 지향된 반종교개혁의 정신에 따른 것으로 높이 평가되어 오늘날에 와서도 가톨릭 교회 음악의 한 규범으로 하고 있다.
음악
편집팔레스트리나는 105개의 미사, 68개의 봉헌, 최소 140개의 마드리갈, 300개 이상의 모테트를 포함하여 수백 개의 작품을 남겼다. 또한, 적어도 72개의 찬송가, 35개의 마니피캇, 11개의 리타니, 그리고 4-5세트의 애가가 있다.
팔레스트리나의 미사곡은 그의 작곡 스타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준다. 그의 Missa sine nomine는 B단조 미사곡을 쓰면서 그것을 연구하고 연주했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에게 특히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팔레스트리나의 미사 대부분은 1554년에서 1601년 사이에 인쇄된 13권으로 이루어졌으며, 마지막 7권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