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온
조온(趙溫, 1347년 ~ 1417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시호는 양절(良節)이고, 본관은 한양이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의 편에 가담하여 정사공신이 되었다. 중종 시대 사림파의 대가였던 조광조의 고조부이다.
조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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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고려 |
사망 | 조선 |
성별 | 남성 |
별칭 | 시호는 양절(良節) |
부모 |
이력편집
- 1392년 개국공신 2등 책록, 한천군(漢川君)
- 1398년 친군위도진무(親軍衛都鎭撫),정사공신(定社功臣) 2등 책록
- 1400년(정종2) 문하부참찬사(門下府參贊事),삼사좌사(三司左使)
- 1401년 의정부참찬사(議政府參贊事)·좌명공신(佐命功臣) 4등 책록,부원군(府院君),성절사(聖節使)
- 1402년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동북면찰리사(東北面察理使)
유배편집
1400년(정종 2년) 태상왕이 세자 이방원으로 하여금 '조온은 지난 난리(1차 왕자의 난) 때 나를 배반하고, 너에게 붙은 것은 신하로써 두 개의 마음을 가진 불충의 죄를 저질렀다.'라고 하였고, 이방원은 임금에게 이를 고하여 조온을 완산부(完山府)에 귀양을 보내게 하였다. 이 때 태상왕은 조온과 함께 이무와 조영무도 같이 귀양을 보내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헌부와 병조 등에서 조온 및 이무, 조영무 등은 정사공신이니 풀어줄 것을 청하였고, 대신들도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이들을 변호하니 조온 및 이무, 조영무는 유배 명령이 떨어진 그 날로 풀려났다.[1]
가족편집
각주편집
- ↑ 《조선왕조실록》 정종 5권, 2년, 7월 2일 4, 8, 11, 12, 21번째 기사
- ↑ 국역 국조인물고 〈조온〉
참고 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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