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왕(辰爾王)은 7세기 초의 남부여의 왕족으로, 무왕법왕의 친생자로 보지 않는 견해에서 무왕의 생부로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법왕의 서자라고는 하나,[1] 확실하지 않다.

진이왕
辰爾王
본명부여관(夫餘寬)
출생?
?
사망?
?
매장지?
국적남부여
자녀복신(福信) 무왕

중국의 사서와 일본의 신찬성씨록에 등장하며 중국의 사서인 《후주서》(後周書), 《풍속통 (風俗通)》, 《만성통보 (萬姓統譜)》, 《성보 (姓譜)》에는 부여관(夫餘寬)이라는 사람이 무왕의 아버지라 한다. 19세기 학자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통해 알려졌다.

생애편집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는 조선 정종 때 일본의 번주 오우치 요시히로(大內義弘)가 보낸 족보를 통해 알려졌다. 오우치 요시히로는 자신이 성왕의 셋째 아들 임성태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확인, 입증해 달라는 공문을 정종 1년(1398년) 7월에 조선으로 정식으로 보냈는데, 거기에 진이왕에 관한 기록이 나타난다.

그후 그의 존재는 잊혀졌다가 19세기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다시 법왕이나 위덕왕이 아닌 부여관이 부여장(무왕)의 아버지라고 쓴 구절이 나오면서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 측 기록편집

남부여 왕족으로, 왜국 도요타 씨와 오우치 씨 가문의 제15세대 선조라고 한다.[1] 일본 신찬성씨록, 도요다 씨와 오우치 씨의 족보에 따르면 그는 무왕의 아버지이다.

일본 도요타 씨 가문의 가계도에서는 14대조 법왕과 16대조 무왕 사이에 존재한다. 그러나 진이왕이 법왕의 아들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법왕의 아들이면서 무왕의 아버지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 측 기록편집

후주서》(後周書), 《풍속통 (風俗通)》, 《만성통보 (萬姓統譜)》, 《성보 (姓譜)》에는 무왕의 생부가 “부여관”이라 한다.

19세기 이규경은 자신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중국 사서인 《풍속통 (風俗通)》, 《만성통보 (萬姓統譜)》, 《성보 (姓譜)》를 인용하여 “南扶餘王夫餘寬生璋, 號帶方郡王。生義慈, 唐拜帶方郡王金紫光祿大夫。生隆, 熊州都督隆。生文宣, 司膳卿左衛大將軍樂浪郡公。此見《萬姓統譜》又《姓譜》”(남부여왕 부여관이 장을 낳고 호는 대방군왕이다. 그가 의자를 낳으니 당나라로부터 대방군왕, 금자광록대부를 받았다. 그는 융을 낳으니 웅주도독이고, 그는 문선을 낳으니 사선경 좌위대장군 낙랑군공에 봉해졌다. 이는 만성통보 또는 성보에 나타났다.)라고 적고 있다.

이규경오주연문장전산고 제2권 천지편(天地篇)의 지리류(地理類) 인종편에 “부여, 부유변증설”(夫餘、鳧臾辨證說)이라 하여 이를 언급하였다.

가계편집

  • 부왕 : 위덕왕 또는 법왕
  • 적모 : 왕후 해씨(王后 解氏)
  • 생모 : ?
    • 국왕 : 진이왕
    • 왕비 : ?
  • 서모 : ?

각주편집

  1. “豊 田 家 系 譜”. 2013년 7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7월 2일에 확인함. 

관련 항목편집

참고 문헌편집

  •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 후주서》(後周書)
  • 《풍속통 (風俗通)》
  • 《만성통보 (萬姓統譜)》
  • 《성보 (姓譜)》
  • 《신찬성씨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