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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김씨 문의공파 묘역(淸風金氏 文毅公波 墓域)은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무덤이다. 2001년 9월 17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177호로 지정되었다.

청풍김씨문의공파묘역
(淸風金氏文毅公波墓域)
대한민국 경기도기념물
종목기념물 제177호
(2001년 9월 17일 지정)
수량묘역 5기, 신도비 2기
시대조선시대
위치
남양주 삼패동 (대한민국)
남양주 삼패동
주소경기도 남양주시 경강로399번길 24, 일원 (삼패동)
좌표북위 37° 35′ 31″ 동경 127° 12′ 4″ / 북위 37.59194° 동경 127.20111°  / 37.59194; 127.20111좌표: 북위 37° 35′ 31″ 동경 127° 12′ 4″ / 북위 37.59194° 동경 127.20111°  / 37.59194; 127.20111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김육선생묘
대한민국 남양주시향토유적(해지)
종목향토유적 제2호
(1986년 4월 10일 지정)
(2009년 11월 17일 해지)

개요편집

청풍김씨문의공파 김식, 김육, 김좌명, 김성응, 김시묵의 묘역이다.

김식(1482∼1520)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조광조와 함께 왕도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개혁에 참여하였다. 김식의 묘는 부인 전주 이씨와의 합장묘로 두 무덤이 나란히 있으며 최근에 새로 정비하였다. 묘 앞에 묘표, 상석, 향로석, 혼유석 각 1기, 망주석, 문인석 각 2기가 남아 있고, 묘역 입구에는 신도비와 묘정비가 세워져 있다. 묘정비는 김식이 경상도 선산으로 유배되었을 때 제자들이 따라가 배움을 계속하면서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기묘사화 때 땅에 묻혔던 것을 다시 세운 것이다. 신도비란 묘 앞이나 묘로 가는 길목에 죽은 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이 신도비의 머리돌에는 이무기 두마리가 구름 속에서 서로 앞발을 들어 여의주를 움켜 잡고 다투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으며 푸른빛이 도는 대리석으로 된 몸돌은 파도 무늬가 나타나고 있다.

김육(1580∼1658)은 실학적 성향을 지닌 조선 후기 문신으로, 대동법의 시행 등 제도 개혁을 추진하였다. 김육의 묘는 부인 파평 윤씨와의 합장묘로 묘역에는 묘표, 상석, 향로석, 혼유석 각 1기, 문인석 및 망주석 각 2기가 있다. 향로석은 6각의 향탁을 형상화하였고 현종 5년(1664)에 세운 신도비의 머리돌에는 두 마리의 이무기가 여의주를 다투고 있는 형상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김좌명(1616∼1671)은 문신으로 김육의 아들이다. 조선 인조 때에 벼슬길에 나가 여러 벼슬을 하였으며, 글씨에 능했다. 김좌명의 묘는 부인 평산 신씨와의 합장묘로 묘 앞에 묘표, 상석, 혼유석, 향로석 각 1기, 문인석, 망주석 각 1쌍씩이 있고 김육의 신도비 옆에 김좌명의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나 향로석 등은 김육의 그것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신도비는 숙종 5년(1679)에 세운 것이다.

김성응(1699∼1764)은 무신으로 20여 년간 병조판서와 훈련대장을 번갈아 가며 지내고 성을 쌓아 정비하는 등 국방강화에 노력하였다. 김성응의 묘는 부인 남양 홍씨와의 합장묘로 묘역에는 묘표, 상석, 혼유석, 향로석 각 1기, 망주석 및 문인석 각 1쌍이 있고 묘역 아래에는 신도비가 있다. 영조 42년(1766)에 세워진 묘표의 머릿돌에는 발가락이 4개인 두 마리의 이무기가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잡으려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묘역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김원행이 비문을 짓고 김시묵이 써서 정조 20년(1796)에 건립한 것이다.

김시묵(1722∼1772)은 문신으로 정조의 왕비인 효의왕후의 아버지이다. 김시묵의 묘는 두 부인과의 합장묘로 석물은 묘표, 상석, 혼유석, 향로석 각 1기, 망주석, 문인석 각 1쌍이 있다.

청풍김씨묘역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 조성되었다. 청풍김씨문의공파묘역은 모셔진 인물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묘역에 있는 여러 석물들의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다.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