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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동(崔振東, 1883년 ~ 1945년 11월 2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일명 명록(明錄/明祿)ㆍ희(喜). 함경북도 온성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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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만주로 망명 이후 중국 지린(吉林)성 봉오동에 모여 살던 최진동ㆍ운산ㆍ치흥 삼형제는 토성을 쌓고 골짜기를 개간해 연병장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사재를 털어 구입한 무기로 ‘군무도독부’를 창설한 뒤 600여명의 청년들을 훈련시켰다. 1920년 봉오동 전투일본군과 전투 끝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공로로 최 장군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그의 친아우 최운산도 독립운동가이다.

자손들편집

인천 남동구 간석동의 한 반지하방에 사는 최정선. 최진동의 둘째 아들 최국량의 딸이다. 최국량은 해방 이후 가족을 중국 땅에 둔 채 남한으로 피신했다rk 1950년대 후반 병사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최진동 장군(1883~1941)의 손녀다. 봉오동에서 태어나 2005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인근 석현에서 평생을 살았다. [1] [2]국내로 봉환된 할아버지 유해를 따라 고국 땅을 밟았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3] [4]

지린성 투먼에 거주하다 2005년 귀국한 최금자. 할아버지의 묘를 한국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한국과 처음 연이 닿았다. 귀국 후 받은 정착금 4500만원으로 집을 얻기 어려워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지하 셋방에서 5년 넘게 살았다.[5]

불편한 진실편집

최진동은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대국인 중국도 일본을 못 이기는데 조선이 독립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판단해 단박에 친일파로 변신했다.

일본군 토벌대의 선두가 돼 항일무장세력 진압에 앞장섰던 인물이 독립운동에 참가한 과거사를 용서받고자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했다.

막강한 재산으로 독립운동과 친일행각을 동시에 벌인 아이러니한 인물이었다.

외부 링크편집

  1. “얼굴도 모르던 독립유공자 6촌 자매 '눈물의 해후'. 한국일보. 2015.08.25. 
  2. “할아버지가 지킨 고국… 반지하 사는 칠순 손녀”. 한국일보. 2015.08.12. 
  3. “[최진동 장군의 손녀 최정선 여사] "봉오동 승리 이끈 것은 최진동 장군". 인천일보. 2017.11.08. 
  4. “반지하서 궁핍한 삶… 내 할아버지는 ‘독립투사’였다”. 기호일보. 2015년 08월 17일. 
  5. "꼭 한국 돌아가야 한다는 조상 말 때문에 귀국했지만, 현실은 냉담". 국민일보. 2019.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