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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중(崔浩中[1][2], 1930년 9월 22일 ~ 2015년 2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전 외무공무원이다. 노태우 정부 당시 북방외교의 한 주역이자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시에도 역할을 했다.

최호중
출생 1930년 9월 22일(1930-09-22)
일제 강점기의 기 일제 강점기 한국 경성부
사망 2015년 2월 19일 (84세)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학력 경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경력 상공부 차관
외무부 장관
직업 전 외무공무원, 관료
배우자 김우명

목차

생애편집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뒤 1956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국제경제국장, 통상국장, 주유엔 유럽사무소 및 제네바대표부 공사, 말레이시아·벨기에 대사 등을 역임했다. 1984년 상공부 차관을 지낸 뒤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등을 거쳐 1988년 12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1989년 2월 헝가리와의 수교 합의 의정서에 서명, 북방외교의 첫 성과를 대외에 알렸다. 1990년 9월 30일 유엔에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부 장관과 '한·소 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재임 중 동구권 국가를 비롯해 18개국과 수교했다.[3] 1990년 12월부터 1992년 6월까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냈다. 당시 남북은 1991년 9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잇단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이후 통일원 통일고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한국외교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기타편집

  • 노태우 정권 당시 북방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북방(北方) 장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4]
  • 1992년 6월 부총리에서 물러나면서 기자들과 만나 “한소 수교의 발판 마련과 역사적인 남북합의서 채택이 공직 생활 중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학력편집

각주편집

  1. 經濟에 밝은 직업外交官 崔浩中 - 매일경제, 1984년 4월 25일
  2. 崔浩中 외무장관 外務部서 잔뼈굵은 正統派 - 경향신문, 1988년 12월 5일
  3. [1],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
  4. [2],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
전임
최광수
제22대 외무부 장관
1988년 12월 5일 ~ 1990년 12월 27일
후임
이상옥
제16대 통일부총리
1990년 12월 27일 ~ 1992년 6월 25일
후임
최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