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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崔桓, 1943년 4월 20일 ~ )은 제10대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본관은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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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1943년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태어나 1961년 전주고등학교, 1965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각각 졸업하고 1966년 제6회 사법시험에서 합격하였다.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 1968년 육군 법무관을 거쳐 1971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에 임용되었다.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 검사로 있을 때 박종철 고문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5공화국 후반기 내내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 자리를 지키며 건국대 점거농성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으로 운동권과의 대결을 벌였지만 학원안정법 제정에 반대하여 이를 관철시키는 등 상당히 합리적인 면도 있어 상황판단능력과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공안통으로 인식된 최환은[1] 김덕룡 정무1장관 등 막연한 사이에 있는 사람이 실세로 있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 3월 대검찰청 공안부장에 임명되었다.[2] 1994년 7월 29일 교육부, 경찰청 등 유관기관 실무 책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사파 수사관련 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대학가에 침투한 주사파의 근원적인 척결을 위해 대학내 주사파를 철저히 파악하여 관련 학생을 수사기관이 집중적으로 검거해 전원 구속 원칙으로 하면서 범청학련을 통한 전화, 팩시밀리통신, 구국의 소리 등 북한 언론매체 청취, 친북 지하조직과의 연계 등을 철저히 단속하기로 했다"고 한 가운데[3] 박홍 서강대학교 총장이 1994년 8월 25일 여의도클럽에서 "사회에 진출한 주사파가 15000명에서 3만명에 이른다"고 말한 것에 대해 다음날 기자와 만나 "주사파의 개념을 잘못 파악한 데서 나온 얘기"라고 하면서 "박홍이 말하는 주사파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사람 뿐 아니라 과거에 주사파 활동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좌익 성향을 가진 운동권 출신을 모두 포함한 것이기에 검찰이 규정하는 주사파 개념과는 다르다"며 "검찰은 주체사상을 믿고 이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 사람만을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4] 박홍 총장의 발언에 대해 경계를 하였지만 그 이후 야기된 지하철노조파업, 김일석 조문 파문, 한총련 사태 등 굵직한 시국 공안사건을 맡아 처리하는 등 신공안정국을 주도했다. 최환은 정치권 인맥에 의한 "정치적 판세를 읽는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5]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있으면서 1995년 10월 실시할 일반사면을 입안하였으며 일반사면 실시하기 직전인 9월 17일에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에 임명되었다. 서울지방검찰청에 설치한 12.12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3차장검사)가 1995년 12월 14일 헌법재판소로부터 5.18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하면서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에 있다가 1980년 5월 31일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직원 등 8601명을 사회정화라는 이유로 강제사직하게 하고 불량배와 노동자 심지어 고교생까지 모두 35000여명을 연행하여 삼청교육하는 등을 할 목적으로 발족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내무위원으로 임명되어 1981년 대검찰청 형사2과장으로 복귀할 때 까지 재직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6]


사단법인 한국언론사협회가 주최하고 시정일보, 뉴미디어코리아 등 협회 회원사가 공동 주관하는 2013년 국제평화언론대상에서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 국민의 법률적 보호를 통한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며 대민봉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최환이 대민봉사대상을 수상했다.[7]

경력편집

수훈편집

  • 1980년 보국훈장 천수장
  • 1997년 황조근정훈장
  • 2007년 율곡인권상
  • 2013년 국제평화언론대상 대민봉사대상

관련 영화편집

각주편집

  1. 동아일보 1995년 9월 17일
  2. 한겨레 1993년 6월 14일
  3. 1994년 7월 30일 한겨레
  4. 1994년 8월 27일 한겨레
  5. 1995년 9월 17일 한겨레
  6. 1995년 12월 15일자 한겨레
  7. 데일리 충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