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필법(春秋筆法)은 『춘추』에서 비롯된 동양의 역사서술 수사법이다. 춘추필법에서는 사건과 인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와 평가보다, 수사법 자체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완곡어법으로 평가를 대신한다. 예컨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사람은 실제보다 작위를 깎아서 기록하는 등의 방식이 그러하다. 이것은 『춘추』 자체가 원래 제대로 된 역사서가 아니라 공자의 사견이 담긴 주석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춘추필법의 예시로, "죽이다"라는 뜻의 세 한자 살(殺), 시(弑), 주(誅)의 용법 차이를 들 수 있다. 『맹자』 양혜왕 하편에서 역성혁명탕무방벌론을 논하는 부분에서, 제 선왕맹자에게 “신하가 임금을 시(弑)해도 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맹자는 “인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고, 잔적한 사람은 그놈(一夫)이라 하니, 라는 그놈을 주(誅)하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弑)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대답한다. "살"이 그냥 죽였다는 뜻으로 중립적이라면, "시"는 아랫사람이 높은 사람을 죽인 것으로서 정당하지 못한 것이고, "주"는 죄 지은 이를 죗값으로 죽음에 처하는 것으로 정당한 것이다. 이렇듯 사용하는 어휘에서 이미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에서 춘추필법이 중국 역사가들이 자기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축소해 기록한 중국 중심주의적 곡필이라고 주장했다.[2][3] 하지만 『춘추』는 경서일 뿐 사서로서는 완벽하지 못하다는 문제는 동양 전통사가들 역시 이미 일찍이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므로 모든 전근대 동양 역사서술이 곡필이었다고 소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례로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춘추』가 완곡어법이 지나쳐서 후세 사람이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한 바가 있다.[4]

각주 편집

  1. 조선 정조. 〈노론하전일(魯論夏箋一) 공자위계씨장(孔子謂季氏章)〉. 《홍재전서 권122》. 卽夫子春秋筆法。皆可使亂賊知懼。 
  2. 신채호. 〈전후삼한고〉. 《조선사연구초》. 사마천은 충실하게 원방 외국인 이집트 바빌론의 역사를 채록하던 희랍의 헤로도투스 같은 사가가 아니요, 즉 공자 춘추의 尊華攘夷, 詳內略外, 爲國諱恥 등의 주의를 견수하던 頑儒라. 
  3. 신채호. 〈총론〉. 《조선상고사》. 대개 높은 이와 친한 이의 욕봄을 꺼려 숨겨서, 주천자(周天子)가 종후(鄭侯)의 화살에 상했음과 노(魯)나라의 은공(隱公).송공(昭公) 등이 살해당하고 쫓겨났음을 춘추(春秋)에 쓰지 아니하였는데, 공구(孔丘)의 이러한 편견이 지나 역사가의 버릇이 되어, 당나라 태종이 이미 빠진 눈을 유리쪽으로 가리고, 그의 임상병록(臨床病錄)의 기록을 모두 딴 말로 바꾸어놓았다. 
  4. 안정복 (김성환 역). 〈범례〉. 《동사강목》. 《춘추》의 서법은 포미(褒美)하고 미워하는 말이 같아서 후인으로 하여금 그 뜻을 측량할 수 없게 하였거니와, 《통감강목》은 모두 일에 따라 바로 써서 권면하고 징계하는 뜻을 분명히 보였으니, 이는 고금의 문(文)과 질(質)이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