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메리 드루베이커

캐슬린 메리 드루베이커(Kathleen Mary Drew-Baker, 1901년 11월 6일 ~ 1957년 9월 14일)는 영국의 조류학자이다. 김속에 대한 연구를 통해 김의 양식이 가능하도록 한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편집

캐슬린 메리 드루(Kathleen Mary Drew)는 그레이터맨체스터주 (영어판)에서 태어났다. 드루는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식물학을 전공해 1922년 수석 졸업했다.[1] 그 뒤 대부분의 연구 인생을 맨체스터 대학교 민꽃식물과에서 보냈으며, 1922년부터 1957년까지 식물학 강사이자 연구원으로 일했다. 1928년 같은 대학교의 이공대 교수 헨리 라이트베이커(Henry Wright-Baker)와 결혼했는데, 당시 기혼 여성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던 맨체스터 대학교는 그녀를 해고했다.[2][1] 하지만 그녀는 1922년 대학교의 애시번홀(영어판) 연구 펠로십(Ashburne Hall Research Fellowship)을 얻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후에 대학교에서 명예 연구원(Honorary Research Fellow)으로 계속 일할 수 있었다.

업적 편집

드루베이커는 김의 생명주기를 연구하여 그때까지 별도의 종으로 여겨졌던 미세조류 Conchocelis가 사실 김의 2배체라는 것을 밝혀냈다.[3] 그녀의 발견은 곧 일본의 조류학자 세가와 소키치(瀬川宗吉)에 의해 재확인되었다. 이 발견은 그전까지 불규칙한 수확으로 인해 고통받던 일본의 김 식용 문화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다.[4] 앞서 1953년에 오타 후사오(太田扶桑男)를 비롯한 일본의 해양식물학자들이 김의 인공 파종 기술을 개발했으나, 드루베이커의 발견이 더해짐으로써 일본의 김 산업은 폭발적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김 양식의 어머니’라고 칭송받고 있다.[5] 구마모토현 우토시스미요시 신사(일본어판)에는 1963년 드루베이커의 헌정비를 세우고 매년 4월 14일마다 그 비석 앞에서 그녀를 기리는 ‘드루제(ドリュー祭)’를 지낸다. 4월 14일은 신사의 행사 기간 중에서 드루베이커의 기일인 14일과 겹치는 날을 고른 것이다.[5]

드루베이커는 영국 조류학회(영어판)의 공동 설립자[6]이자 초대 회장이다.[7] 학명에는 K. M. Drew라는 명명자 표기를 하였다.[6]

편집

  1. “Drew-Baker, Kathleen M. (1901-1957) on JSTOR”. 《plants.jstor.org》. 2020년 3월 25일에 확인함. 
  2. “Girl from Leigh who became Japan's Mother of the Sea”. 《Lancashire Telegraph》 (영어). 2018년 6월 9일에 확인함. 
  3. Drew, Kathleen M. (1949). “Conchocelis-phase in the life-history of Porphyra umbilicalis (L.) Kütz”. Nature 164 (4174): 748–749. doi:10.1038/164748a0. 
  4. Graber, Cynthia (2014년 12월 19일). “How This British Scientist Saved Japan's Seaweed Industry”. Mother Jones. 
  5. 山本文市「海苔養殖の母 英国学者◇戦後日本の食卓支えた功労者顕彰、後世に伝える◇」『日本経済新聞』朝刊2018年5月28日(文化面)。
  6. 〈Drew , Kathleen Mary (1901–1957)〉. 《옥스포드 영국 인명 사전》 온라인판. 옥스포드 대학교 출판부. doi:10.1093/ref:odnb/94193.  (Subscription 또는 UK 공공도서관 회원 필수.)
  7. Inglis-Arkell, Esther (2017년 11월 19일). “How an unpaid UK researcher saved the Japanese seaweed industry”. 《Ars Technica》.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