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닐리어스 반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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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리우스 밴틸(영어: Cornelius Van Til, 1895년 5월 3일 ~ 1987년 4월 17일)은 네덜란드 후루테가스트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오랜동안 변증학을 가르친 신학자이다. 변증학에 있어서 전제주의 변증은 그의 대명사이다.

코넬리우스 밴틸
본명코넬리우스 밴틸
출생1895년 5월 3일(1895-05-03)
네덜란드 후루테가스트
사망1987년 4월 17일(1987-04-17) (91세)
성별남성
국적네덜란드 왕국

생애편집

반틸은 낙농업자였던 이테 반틸과 그의 아내 클라시나 반 데르 빈 사이의 여섯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그의 가족 중에 처음으로 고등 교육을 받았다.

1914년에 칼빈 예비학교에 입학하여 칼빈 칼리지를 졸업하였고, 칼빈 신학교에 1년을 다녔는 데, 그 곳에서 루이스 벌코프 밑에서 수학을 하였으나, 곧 프린스턴 신학교로 옮겨가 그 곳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프린스턴에서 교수직을 시작하였지만, 동료 교수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우고, 그곳에서 43년을 가르쳤다. 1972년 은퇴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변증학과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정통장로교회의 목회자로 고든 클라크와 하나님의 불가해성에 대하여 논쟁을 벌였으면, 이것을 클라크-반틸 논쟁으로 부른다.

전제주의 변증방법편집

코닐리어스 밴틸(Cornelius Van Til)이 전제주의 변증방법을 주장하다. 이 방법은 기독교 믿음이 이성적 사고를 위한 유일한 기초라고 믿는 것이다. 전제주의는 먼저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다른 세계관들의 결함을 드러내려고 시도한다. 인간은 전제를 떠나서는 인간 경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비 그리스도인은 이성적으로 중립적인 추론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이 방법은 그렉 반센에 의해서 대중화되었다.


평가편집

존 프레임편집

존 프레임은 반틸에 대하여 비기독교 철학에서의 이마누엘 칸트와 필적하는 기독교 사상가로 꼽는다. 반틸은 조직신학과 변증학의 훈련을 중시하였고, 조직신학에 대하여는 기독교 신앙의 긍정적인 표현으로, 변증학을 그 표현을 방어하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전제주의적 변증방식은 불신자들의 전제, 준거점, 세계관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즉 그들의 인식체계 하에서 신앙을 변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접점의 문제에서 접점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기독교는 그런 방식으로 변증되지 않는다고 본다.

비판점은 몇 가지가 있다. (물론 반틸이 칸트와 필적한다는 존 프레임의 말은 옮기지 않는 것이 좋다. 용어가 복잡하다는 공통점 빼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로, 반틸의 변증학이 일종의 변증의 모라토리엄(moratorium)이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반틸의 전제주의 안에는 귀납법적인 방식이 있다. 수많은 사태들과 결과들을 통해 나타난 데이터를 해석하여 결과를 내는 방식이다. 반틸의 전제주의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세상적인 방법으로의 진리변증의 방법들이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그러므로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신학에서는 그렇다. 반틸과 대척점에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은 미완성의 작품이고 그 작품을 통해서 그다지 많은 불신자들이 돌아선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여러 가지 통찰력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기독교 진리를 설명하는 방법 그 자체는 아리스토텔레스 밑으로 들어가는 행동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공동체 안에는 신학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기독교 공동체(Christianity)의 핵심은 교회이다. 교회는 세상 안에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에서 진리를 선포하는 임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세상의 가치관과 언어로 설명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다. 이러한 교회의 수고의 정당성을 결과론적으로 결론짓고 매도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둘째로, 보수주의자들은 거품물만한 내용이지만, 반틸의 방식은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신존재 인식이며 성경이 변증하려는 방식의 하나님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 표현 방식은 세상의 방식과 진공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단어 엘로힘은 고대 근동에서 그냥 일반 신을 표현하는 종교용어였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헬라철학에 근거한 용어이다. 이건 선교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 을 부를 때 이 단어는 원래 하ᄂᆞ님'이라는 낱말은 초기 한국 기독교 사회에서는 쓰이지 않았다. '하ᄂᆞ님'은 본래 무교 단어였다. 초기 한국 기독교 사회는 개신교·가톨릭을 막론하고 모두 '천주'라는 단어로 통일했었다. 이후 가톨릭에서는 계속 천주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개신교에서는 천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이는 당시 개신교 신자들의 숫자가 한반도 서북쪽에 많아 개신교 신자들이 '하ᄂᆞ님'을 서북 방언인 '하나님'으로 불렀기 때문에 그쪽 말을 표준으로 한 것이다. 하늘의 옛 표현은 '하날'이나 '하늘'이나 둘 다 '하ᄂᆞᆯ' 이었고, 따라서 하날이라고 표기될 수도 있지만, 아래아가 1912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서 폐지되면서 1937년에 만들어진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하늘이 하날이라고 표기되어있다. 이것이 개정되어 1961년에 나올 때는 하날을 하늘로 표기를 고쳤는데, 하나님은 하느님으로 표기를 고치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전제주의적 방식으로 신학을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게 되는 상황으로 귀결된다. 물론 반틸을 교조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은 이 방식 조차 세상적인 방식으로 기술된 것이라 비난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고방식은 일종의 초플라톤주의(hyper-platonism)에 가깝다. 플라톤 마저도 질료와 형상의 관계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제론적 방식은 질료자체를 '세상방식'이라는 편한 방식으로 퉁쳐버리고 일련의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반틸의 추종자들은 좁은 길을 말함과 동시에 좁지만 편한 길을 추구하기 때문에 신학사에서는 별로 큰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하다. 존중받는 신학은 실패하지 않거나 약점이 없는 신학이 아니다. 우리의 신학의 도상의 신학이지, 완성된 신학이 아니다. 존중받는 신학은 시대 속에서 얼마나 통찰력있게 진리를 설명하고 변증하려 하였는가에 있다.

같이 보기편집

저서들편집

  • A Survey of Christian Epistemology (In Defense of the Faith, vol. II; available online
  •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In Defense of the Faith, vol. V)
  • Common Grace and the Gospel
  • A Christian Theory of Knowledge
  • The Defense of the Faith
  • The Reformed Pastor and Modern Thought
  • Christian-Theistic Evidences (In Defense of the Faith, vol. VI),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8
  • The Doctrine of Scripture (In Defense of the Faith, vol. I), Copyright denDulk Christian Foundation, 1967
  • The Sovereignty of Grace: An Appraisal of G.C. Berkouwer's View of Dordt, Nutley,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5
  • The New Synthesis Theology of the Netherlands, Nutley,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6
  • The Case for Calvinism
  • Essays on Christian Education
  • Psychology of Religion (In Defense of the Faith, vol. IV)
  • The New Hermeneutic
  • The Intellectual Challenge of the Gospel (pamphlet)
  • Why I Believe in God (pamphlet; available online for free), Philadelphia, Pa.: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no date
  • Paul at Athens (pamphlet),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8
  • Karl Barth and Evangelicalism (pamphlet), Nutley,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64
  • 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2nd Ed,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4)

참고 문헌편집

  • 이승구, 『코닐리어스 밴틸: 개혁파 변증학의 선구자』 살림, 2007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