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방효유

마지막 의견: 11년 전 (Leedkmn님) - 주제: 사육신과 비교되다 부문에서

사육신과 비교되다 부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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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황명의 나라를 세운 규모는 너무 까다롭고 각박하였다. 방효유가 즉위 조서를 쓰지 않은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탁경(卓敬)의 죽음 또한 어찌 높이 뛰어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는데, 정조의 심복이자 당시 승지였던 홍국영은 "연왕이 국가를 위해 선비를 배양한 것이 30년이었는데 오직 한 사람의 탁경을 얻었을 뿐입니다. 연왕이 비록 주살은 하였지만 또한 그의 충렬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답하며 방효유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 부분을 방효유를 높이 평가하였다고 하기에는 좀 이상합니다. 정조와 홍국영이 얘기하는 주된 사람은 방효유가 아닌 탁경 아닙니까? 방효유도 대단하지만 탁경도 그 못지 않다는 내용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을 인용하면서 방효유를 높이 평가하였다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Leedkmn (토론) 2013년 5월 16일 (목) 23:44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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