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와 맥 동서 위치 표현이 틀렸습니다 편집

역사 정리하면서 최근 몇 일 동안, 예와 맥, 어떤 것이 동쪽 어떤 것이 서쪽에 있었나 전문가들 표현도 제각각이고 본인이 쓴 글도 틀려서 찾느라 헤맸는데, 위키 검색 한자 검색하니까 분명해집니다.

예(濊)와 맥(貊)을 갈라 보는 견해에서는 예족은 요동과 요서에 걸쳐 있었고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하고 있다가 고조선 말기에 서로 합쳐진 것이라고 보며, 예맥(濊貊)을 단일종족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예맥은 고조선의 한 구성부분을 이루던 종족으로서 고조선의 중심세력이었다고 본다.[1]

이 내용에서,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하고 있다가, 이 표현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예(濊)는 요서 지역에 있었던 부족 국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맥(貊)에 대한 위키 설명은 없습니다. 맥(貊)의 뜻을 윈도우10 한자 검색하면, 북방 종족이란 뜻이고, 랴오닝성은 요하를 중심으로 요서와 요동으로 나뉘고, 요동엔 BC 500년 경 쑹화강 유역 고리국 북쪽에서 내려 온 부여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濊)는 요하 서쪽으로 표현되는데, 부여 활동반경을 고려하면 산악지형인 길림성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것이 맥족, 요서엔 예(濊)가 있었던 것이 확실하고, 부여 활동 반경 고려하면, 요하 지역은 예(濊)가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북방 종족인 맥족이 서쪽에 있었다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삼국유사나 제왕운기에서 공통적으로 국가던 아니던 기자조선 존재를 인정하고 있고, 시기상으로 예(濊)족은 기箕씨 일족을 중심으로 한 주나라 상민정책(삼감의난 평정이후 상나라 사람을 전국에 노예로 분산 이주 시키는 정책)을 피해 도망 온, 상나라 여러 성씨 부족입니다.

주나라는 희성 친족을 중국 전역 다른 씨족에 왕으로 분봉했지만, 상나라는 씨족 국가로, 성씨 대종 소종 개념인, 족읍 국가였고, 대종 종손 왕이 있는 곳을 대읍이라 블렀습니다.

중국이 무엇으로 불렀던지 상관없이, 요하지역엔 기씨일족을 중심으로 한 상나라 유민이 상민정책을 피해 대규모 이동 몰려들었고, 요하지역에 예(濊)부족을 먼저 형성했고, 북쪽 쑹화강 고리국이 전신인 부여계 맥족이 BC 600~500년 전후에 길림성 산악지역까지 확장되면서, 예맥이 랴오닝성과 길림성 이웃 씨족, 부족 국가로 200~300년 교류하면서, 같은 공동체를 형성한 것으로 보이고, 씨족 집단이 기본 이기 때문에 크게 섞이진 않았습니다. 위키 검색 결과에 BC 300년 연나라 진개 조선 침공 있었고, 요하에 있던 예족 기자조선은 왕검성 평양을 뺏기면서 남하, 현재 평양으로 왕검성을 이전했고, 100년도 안되서 주나라 문왕 아홉째 아들 위강숙 후손인 위만 반란에 평양 지역을 잃으면서 망했고, 유민을 이끌고 남하 마한을 세웠고, 후일 맥족 부여계 고구려에서 파생된 백제 온조에 멸망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그것을 기자조선 기씨일족으로 부르던, 예족으로 부르던 상관없이 기록에 있는 사실 들이며, 예족 맥족 우치가 혼란스러웠는데, 한자 검색해보니, 북방 종족 맥,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자는 5천년 이상 쓰여진 상형문자입니다.

서쪽에 있다가를 동쪽에 있다가로 바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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