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에라스투스

토마스 에라스투스(Thomas Erastus, 1524년 9월 7일 - 1583년 12월 31일)는 스위스의 의사이며 신학자로, 100개의 논문을 썼는 데, 교인이 지은 죄는 반드시 세속 정부가 치리를 해야 하며, 교회 내의 성찬 거부에 대한 것도 반대하였다. 울리히 츠빙글리의 성만찬 교리를 따랐고, 1570년에 장로교 정치에 반대하였으나 실패하였다.[1]

토마스 에라스투스의 초상화

에라스투스주의편집

에라스투스는 그의 논문에서 만일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할 경우, 국가의 지도자에 의해 처벌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교회의 성직자나 목회자에 의해 행해졌던 성만찬금지보다도 국가에 의해 처벌을 받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는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2]

그의 동료인 루돌프 괄테르는 그를 전폭 지지하였다. 부분적으로는 하인리히 불링거에 의해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테오도르 드 베즈등의 그의 의견에 반대하였다. 17세기에 그의 치리논문은 존 라잇풋존 셀든, 토마스 콜맨의 지지를 받았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Thomas Erastus” (영어). 2020년 1월 23일. 
  2. Fesko, J. V., 1970-. 《The theology of the Westminster standards : historical context and theological insights》. Wheaton, Illinois. 300쪽. ISBN 978-1-4335-33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