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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6일 (일)

  • 20:362023년 8월 6일 (일) 20:36 차이 역사 −139 희왕 (발해)→‎생애: 정왕이 병으로 죽자, 아우인 대언의가 나랏일을 맡고, 당나라에 외교 사절단을 파견해 선왕의 죽음을 알렸다. 그 후 즉위한 대언의는 연호를 주작(朱雀)으로 정하고, 다음 해 당나라의 내시인 이중민(李重旻)이 다녀갔다. 계승 이유에 대해서 구당서, 신당서, 발해고 등 사서에 언급되지 않는다. 재위 동안 당나라에 자주 사절단을 보냈다. 그리고 불교가 융성했다. 813년에는 고예진(高禮進)등 37명을 당에 보내, 발해의 금은의 불상 각 1체를 선물했다. 황실이 불교에 귀의했다는 방증이며, 발해 유적에서는 대량의 동불(銅佛)·전불(塼佛)이 출토되었다. 또 일본에도 사절단을 보내서 문화 교류도 활발히 행해졌다. 발해사정사(渤海史正使)의 왕효렴(王孝廉)이 쓴 시들이 《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에 수록되어 현재에 전해지고 있다. 태그: 시각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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