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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당 태종|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자신의 성씨인 이(李)와 소리가 같은 이(鯉, 잉어)를 먹지 못하며 글로 쓰지도 못하도록 하였다. 이에, 잉어를 이(鯉) 대신에 적선공(赤鮮公 : 붉은 물고기님)이라고 고쳐 쓰게 되었다.
*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이름자 세(世)를 피하기 위해 世 자를 대(代)자로 바꿔 썼다(절세가인[絶世佳人]을 절대가인[絶代佳人]으로).
*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이름자 세(世)를 피하려다 보니, 역사서 수서(隋書)를 편찬할 때 [[왕세충]](王世充)을 왕 충(王 充)이라고 세(世)자를 공백으로 남겨 놓았고, 이 탓에 [[전한]]의 [[왕충 (전한)|왕충]](王充)과 혼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또한 [[이세적]](李世勣)은 世 자를 뺀 이적(李勣)으로 개명했다.
* [[송나라]] [[휘종]]은 용(龍), 천(天), 군(君), 옥(玉), 제(帝), 상(上), 성(聖), 황(皇)의 여덟 자로 이름이나 자호를 짓지 못하게 하고, 이미 지은 이름과 자호도 고치게 ([[개명]]) 하였다.
* [[금나라]] 때에는 [[주공]]과 [[공자]]의 이름을 피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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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피휘 ==
* [[신라]] 시대 [[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와 숭복사비문(崇福寺碑文)에서 [[육십갑자]]의 [[병진 (간지)|병진]](丙辰)과 [[병오]](丙午)를 각각 경진(景辰)과 경오(景午)라고 썼다. 이것은 [[당나라]] 고조(高祖)의 아버지 휘 ‘병(昞)’의 음을 피하기 위해 ‘경(景)’을 썼기 때문이다.
* [[고려]] 시대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구당서]]》, 《[[신당서]]》 등의 중국 문헌에서 [[당 고조]] 이연(李淵)의 휘를 피하여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성을 천(泉)으로 고쳐 쓴 것을 알지 못하고, ‘천개소문’이라 표기하였다.
* [[고려]] 시대 봉암사(鳳巖寺) 정진대사탑비문(靜眞大師塔碑文)에서 '문무양반(文武兩班)'을 '문호양반(文虎兩班)'이라고 썼다. 이것은 [[고려 혜종]]의 휘 "무"(武)를 피하기 위해 "호"(虎)를 썼기 때문이다. 중국 [[황제]]가 아닌 한국 [[왕]]의 [[휘]]를 피한 기록은 이것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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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한 경우 ==
* 중국인은 이름에 회(繪)자를 쓰지 않는데, 오늘날 중국의 대표적인 매국노 가운데 하나로 지탄받는 남송의 [[진회 (남송)|진회]](秦檜) 의 이름을 피하기 위함이다.
* 원래(原來)라는 말은 원래(元來)였으나 ‘원([[원나라]])이 온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한자 문화권]]에서는 원나라가 물러난 뒤에 원래(原來)로 바꾸었다. 오늘날에는 둘 다 쓰인다.
*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진수 (서진)|진수]](陳壽)는 촉의 장수 [[오의]](吳懿)의 이름을, 위나라의 장수 [[사마의]](司馬懿)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오일(吳壹)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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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user.chollian.net/~tiancai/etc/chinaetc/bihui.htm 피휘(避諱)란 무엇이며, 어떤 규칙과 방법이 있는가? ]
 
== 주석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