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토디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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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thumb|200px|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 형제 '''메토디우스''' 또는 '''메토디오스''' (그리스어: Μεθόδιο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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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릴루스와 메토디우스는 [[그리스]] [[테살로니키]]의 [[비잔티움 제국]]의 해군 제독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5살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으나 일찍부터 관직에 나갔다. 그는 슬라브족이 많은 지역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에 슬라브어에 능했는데 관직에서 물러나 명상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비티니아]]의 올림푸스 산에 있는 수도원에서 은거하면서 살았다.
 
[[862년]] [[대 모라비아]]의 군주 [[로스티슬라프]]가 황제 [[미카일 3세와3세]]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우스에게[[포티우스]]에게 사절을 보내 기독교로 개종을 요청하였다. 사실 로스티슬라프의 요청은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그는 북서부의 국경에서 프랑크족의 압박을 받았는데 [[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가 [[불가리아의 보리스 1세]]와 동맹을 맺자 자신도 동맹 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항상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영향력 확대를 바라는 황제와 포티우스에게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에 언어에 뛰어난 키릴루스가 선정되었고 [[864년]] 초여름 키릴루스는 수도원에 은거하던 형 메토디우스를 불러내어 형제는 모라비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형제는 슬라브어로 [[성서]]를 번역하며 3년 반동안 슬라브족의 선교에 헌신했다.
 
일설에 따르면 키릴루스는 그 때까지 문자가 없었던 [[슬라브어]]를 표현하기 위해 새 문자를 발명해서 성서와 일부 기도문을 번역했는데 그가 사용한 언어는 마케도니아식 슬라브어였다고 한다. 모라비아인들이 쓰는 언어와는 달랐기 때문에 모라비아 선교는 실패했지만 나중에 이 문자들은 슬라브족의 언어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예전에는 키릴루스가 고안한 문자는 현대의 키릴 문자가 아니라 더 조악하고 오래전에 사멸한 [[글라골 문자]]라고 생각했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해 부정되었다.<ref>존 줄리어스 노리치, 남경태 역 《비잔티움 연대기》제2권:번영과 절정, 629쪽의 주석 40.</ref>
 
==로마에서 주교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