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기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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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기원의 연대 환산에 대하여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사]]》 열전 '[[백문보]](白文寶, 1303~1374)'조(條)로, [[고려 공민왕|공민왕]]에게 글을 올려 단군기원을 언급한 부분이 있다.
 
{{인용문|[[하늘]]의 기수(氣數)는 순환하여 700년이 한 소원(小元)이 되고, 3,600년이 쌓이면 한 대주원(大周元)이 되니, 이것이 황제(皇帝)와 왕패(王覇)의 치난흥쇠(治難興衰)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부터 지금([[1362년]])까지 이미 3,600년이므로 주년(周年)의 기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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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제왕운기]]》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에는 [[제석천]](帝釋天, [[옥황상제]])의 손자 [[단군]]이 제고(帝高, 帝堯)와 같은 무진년에 즉위하여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그 동안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1,028년이라 했으며, 그 뒤 164년이 되는 주(周)나라의 호왕(虎王, 武王) 원년 기묘에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도망 와서 나라를 세웠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승휴의 서술에는 연대상 착오로 보인다. [[주나라]] 무왕 원년은 기묘년으로 [[기원전 1122년]]에 해당되는데, 이로부터 [[단군]]이 신이 되고 나서 [[기자]]가 나라를 세우기까지의 기간인 164년을 소급하면 [[기원전 1286]]년이 되며, 여기서 다시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기간 1,028년을 가산하면 [[기원전 2313년]]이 된다. 이것은 요임금[[단군]]이 제고(帝高, 帝堯)와 제요가같은 즉위하였다는무진년에 즉위하였다면 계산상의 무진년([[기원전 2333년]])보다 20년이 늦다.
 
그러나그래서 《[[세종실록]]》 [[조선 세종|세종]] 18년 12월 정해조에 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유사눌(柳思訥)이 상서한 내용에 “신(臣)이 《[[세년가]](世年歌)》<ref>세년가는 《단군세년가(檀君世年歌)》를 칭하는 것으로 [[조선 세종]] 때까지 별도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ref>를 상고해 보건대 [[단군]]이 처음에는 [[평양]]에 도읍했다가 뒤에는 백악(白岳)에 도읍했으며, [[은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 아사달산에 들어가서 신이 되었는데, 그 노래에 이르기를 1,048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지금도 사당이 아사달에 있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한 것을 보면 《[[제왕운기]]》에서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1,028년이라고 한 것은 1,048년의 잘못으로 보이며, 그렇게 본다면 [[기원전 2333년]]이 합당하다. <ref>{{뉴스 인용|url=http://weekly.hankooki.com/lpage/column/200512/wk2005121915051237660.htm|제목=최태영의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성=|이름=박용배 언론인|작성일자=2005-12-19 |출판사=주간한국|확인일자=2013-01-30}}</ref>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현재의 단기 연대를 확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조선 세종]] 때, [[서거정]]이 만든 《[[동국통감]]》이 최초인데 단기 곧 단군기원은 [[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 하였다. [[단군]]의 즉위가 [[중국]]의 [[요임금]] 즉위 25년에 이루어졌다는 [[조선]] 초기의 역사 책 《[[동국통감]]》의 기록이다. <ref>{{뉴스 인용|url=http://www.suwon.com/news/articleView.html?idxno=78346|제목=우리나라 개국(開國)의 기원(紀元)|성=|이름=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작성일자=2012-10-09|출판사=수원일보|확인일자=2013-01-25}}</ref>
 
{{인용문|이가 [[단군]](檀君)이며 국호(國號)는 [[고조선|조선]](朝鮮)이었는데, 바로 [[요순#요 임금|당요]](唐堯) 무진년(戊辰年: [[기원전 2333년]])이었다.}}
 
조선후기의 [[안정복]](安鼎福, 1712년([[조선 숙종|숙종]] 38) ~ 1791년([[조선 정조|정조]] 15))은 《[[동사강목]]》에서 “《[[동국통감]]》과 《[[고려사]]》 지리지에 모두 ‘당요 무진년에 단군이 평양에 도읍하였다’하였는데, 요의 즉위가 상원갑자 갑진에 있었으니 무진은 곧 25년”이라고 하여, 기원전 2333년을 [[단군]]의 즉위 원년으로 보았다.
 
== 단기폐지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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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회의원]] 일부에서 단기연호를 병용하자고 나서고 있다. 이들은 서기를 포기하고 단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많이 쓰고 있는 서기와 함께 우리의 주체성을 함께 살리는 단기를 병용하자는 것이고 분단된 남북의 동질성 회복과 민족 통일을 위해서도 개천절의 의미는 다시금 조명돼야 하며 단기 연호 병용은 반드시 부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제처]]는 [[2012년]] [[7월 8일]]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기이며 단기를 함께 쓸 경우 불기(佛紀), 공기(孔紀)도 문제되므로 혼란이 커질 것"이라며 단기연호를 공용연호로 쓸 수 없음을 발표한 바 있다. <ref>{{뉴스 인용|url=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100315091799935&nvr=Y|제목=정치권, 개천절맞아 "홍익인간 정신 받들어 대선승리"|성=|이름=정치경제부 이경호 기자|작성일자=2012-10-03|출판사=아시아경제|확인일자=2013-01-25}}</ref>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