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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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 ==
=== 진감선사탑비 ===
{{본문|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유형문화재 정보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는 국보 제47호이다.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정강왕 2년(887년)에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썼으며 승, 빈영이 새겼다.
| 소재_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 그림 =
| 그림설명 =
| 이름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br /> (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 지정_번호 = 47
| 지정연월일 = [[1962년]] [[12월 20일]]
| 소재지=
| 제작_시기 = [[신라]]
| 비고 = [http://www.cha.go.kr/unisearch/Uniresult_Db_View.jsp?VdkVgwKey=11,00470000,38 문화재청 문화재정보]
}}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는 국보 제47호로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다.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정강왕 2년(887년)에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썼으며 승, 빈영이 새겼다. 이 탑비는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의 하나로 유명하다. 진감선사는 애장왕 5년(804년)에 입당, [[흥덕왕]] 5년([[830년]])에 귀국, 쌍계사를 창건하고 역대 왕의 존경을 받다가 [[문성왕]] 12년(85) 쌍계사에서 77세로 시적하였다. 비의 높이는 3m 63cm, 탑신의 높이는 2m 2cm, 혹은 1m,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이고 비신은 흑대리석이다. 현재 비신의 우측 상부에 크게 흠락된 부분이 있고 또 균열이 상당히 심하다.중앙에 높직한 비좌를 마련했는데 4면에는 운문이 있고 상면에는 비신에 맞게 구멍이 뚫어져 있다. 귀두는 짧고 추상적인 동물의 머리로 표현되어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수는 양측을 비스듬히 자른 오각형으로 4면에 쟁주하는 용이 있고 전면 중앙에 방형으로 깊이 판 제액이 마련되어 있으며 비문의 자경은 2.3cm, 자수는 2,423자이다.
 
=== 쌍계사 승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