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 (촉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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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적 ==
[[219년]], [[유비]](劉備)가 한중왕이 되자 [[뇌공]](賴恭)을 태상, [[왕모]](王謨)를 소부로 삼을 때 [[황주]](黃柱)는황주는 광록훈이 되었다. [[220년]]에는 황주를 포함해 허정(許靖), 제갈량(諸葛亮), 미축(麋竺), 왕모, 뇌공 등 120명이 함께 유비가 즉위하도록 간청하는 상주문을 올렸다.
 
왕모, 뇌공와 함께 그 사적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전을 만들지 못했다고 하며, 행적은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지만 광록훈을 지낸 것으로 볼 때 조정 내에 제사, 조회, 향연 등을 맡았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