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괄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Abend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15번째 줄:
이괄은 황주신교에서 [[정충신]]과 [[남이흥]]의 군대를 격파하고, 마탄에서 다시 부도제찰사 [[이시발]]이 이끄는 관군을 격파하고 황해도방어사 [[이중로]]와 우방어사 [[이성부 (1583년)|이성부]]를 전사시켰다.
 
이괄군이 [[개성]]을 지나 2월 8일 임진강을 건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 인조|인조]]는 그날 밤 서울을 버리고 [[수원]]에 도착하였다. [[천안]]에서 반란군의 평정 소식을 접하였으나 배주하는패주하는 반란군이 [[이천시|이천]] 쪽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12일 새벽 [[공주시|공주]]로 피란을 갔다.
 
[[음력 2월 11일]] 이괄군은 [[한양]]에 입성하여 [[경복궁]] 옛터에서 [[조선 선조|선조]]의 열 번째 아들 [[흥안군 (조선 중기)|흥안군 제]](興安君 瑅)를 왕으로 세웠다. 인조는 6일 동안 공주에서 난을 피해 있어야 했고 한편 [[이괄]]은 포로가 된 [[풍천]] 부사 [[박영신 (조선의 무신)|박영신]]이 끝내 협력하지 않자 그를 참살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