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문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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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으로 남아 있는 한국의 시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한글]]이 반포되기 전의 한국어시는 [[향찰]]이나 [[이두]]로 기록되었다.
* [[향가]]
* [[고려 가요]]
* 고려가요
* [[시조]] - 3.4.3.4 / 3.4.3.4 / 3.5.4.3 으로 진행되는 한국어 시이다.
* [[한시]]
* 현대시
==== 상고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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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민족]]은 [[제천 의식]]과 가무를 통해 [[한국의 상고시대 시가|시가 문학]]을 만들어 냈다. 서정 양식은 서정시로 대표된다. 고대 한민족은 제천 의식과 가무를 통해 문학의 창조적 싹을 틔워 왔다. 시가의 기원은 원시 고대적 공동체 사회의 [[제사|제의]](祭儀)에서 발생하였다. 제천 의식 때 제주(祭主)가 되는 기도사(祈禱詞)나 송축사(頌祝詞), 민족적 시조신(始祖神)이나 영웅을 칭송하는 제사(祭詞) 같은 것은 신악(神樂)이나 율동적인 무용과 아울러 종합 예술의 분위기를 형성했고, 또 이것이 민족 문학의 모체가 되어 주었다. 예컨대,《[[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에 [[고구려]] 민족은 가무를 좋아하며 10월 [[제천 행사|제천시]] 국중에 대회를 갖는데, 이를 동맹이라 했다 한다. (→[[한국의 제천 행사#고구려|고구려의 제천 행사]] 참조) 이러한 제의에서 불린 노래가 곧 삼국 초기의 시가 문학이다. 시가는 분화되어 악기를 연주하는 노래로 발전하고, 지금은 음악으로부터 유리된 가사만이 변천의 과정을 겪고 문자로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기록된 [[가야]] 건국 신화 속에 낀 원시 시가의 유편인 〈구지가〉, 〈황조가〉, 〈공후인〉 등이 신화·전설 속에 묻혀 오늘날까지 그 가사의 내용이 한역(漢譯)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중, 〈황조가〉는 연애 감정을 표현한 서정적인 내용의 작품으로서 집단적인 원시 문학으로부터 개인적인 고대 서정 문학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 삼국 시대 ====
{{본문|한국의 삼국시대 시가}}
삼국은 각기 부족 연맹으로부터 세력을 키워 [[고대 국가]]로 성장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자체의 문학을 발전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이 초창기에는 아직 문화적으로 제의와 밀접히 관련된 원시의 치졸한 단계에 머물러 있던 것이 삼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집단적·제의적 성격을 탈피하여 개인적인 문학예술이 발달을 보게 된 것이다. [[향가]]는 세련된 개인 창작시로서 남북국 시대의 문학을 대표하고 있다. [[신라 유리왕]] 연대에 지어진 〈도솔가〉, 〈회소곡〉 등은 농업 국가를 형성한 신라 민족의 제신적인 성격에서 벗어난 비종교적인 시가이다. [[향가]]는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본격적으로 발달한 시가 양식이다. 이것은 특히 [[경주시|경주]] 지방을 중심으로 한 화랑·승려 등 신라의 중앙 귀족층에 의해서 발달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제의적·민요적인 것과는 달리 개인 창작 예술로서 어디까지나 귀족 문학인 것이다. 이 향가의 완성형은 10구체이며, 그 과도기적인 형태로서 4구체와 8구체가 있다. 내용 면에서 보면, 주로 생사(生死) 등 인생의 심각한 문제를 높은 종교적인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려 우아한 언어로 표현한 고상한 서정시이다. 현재 전통적인 신라 향가 14수와 균여의 불교찬가로 지어진 11수가 전하고 있다. 신라 말기에 [[위홍]]과 [[대구화상]]에 의해 향가집 〈[[삼대목]]〉이 편찬되었다고는 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 참고 자료 ==
* 이형기, 시란 무엇인가, 한국문연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