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니아누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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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대결 (540–562) ===
540년에 유스티니아누스가 이탈리아 문제에 골몰해 있을 때 사산조 페르시아가 침공했으며, 수도로 돌아온 벨리사리우스는 곧 이 전쟁에 투입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가 동방의 군대를 다소 소홀하게 방치하고 있는 틈을 타 사산조의 왕 [[호스로우 1세]]는 유스티니아누스와 맺은 협정을 깨고 메소포타미아와 북부 시리아, 비잔틴령 아르메니아로 진격해들어와 주요도시들을 차례로 약탈했고 541년에는 북부의 라지카(콜치스)를 침공했다. 벨리사리우스는 이에 맞서 싸우다가 544년 다시 이탈리아로 소환당했다. 전쟁은 다른 장군들의 지휘 아래 장기간 질질 끌었으며 [[543년]]에는 전염병이 로마군을 덮쳤고 호스로우는 중요한 요충지인 에데사를 공격했으나 끝내 실패하였다. 양측은 별 소득없이 전투를 벌이다가 [[545년]]에 5년간의 휴전협정을 맺었다. 협정에 의해 비잔티움은 500파운드의 금을 주고 사산조는 비잔티움 제국령을 침공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승인했다.551년 양 제국간의 휴전조약이 갱신되었으나 라지카는 페르시아인들이 완강하게 반환을 거부함으로써 휴전이 적용되지 않고 산악지대에서 치열한 접전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그러나 557년 휴전협정이 다시 갱신되면서 이번에는 라지카도 포함되었다. 마침내 561년말경에 50년간의 휴전협정이 타결되었다. 비잔틴은 연간 3만 솔리디(금화)의 공물을 바치는 데 동의했으며 페르시아는 북방의 침략자들을 막아주는 중요한 방벽인 라지카에 대한 모든 권리주장을 철회했다.
 
=== 두 번째 이탈리아 원정(544–5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