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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평'''(王平, [[155년]] ~ [[248년]])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로, 자는 자균(子均)이고 파서 탕거 사람이다. 원래는 [[조조]](曹操)의 장수였으나, [[한중 전투]]때 [[유비]](劉備)에게 항복한 뒤 아문장, 비장군이 되었다. 아들은 [[왕훈]](王訓)이 있다.
 
== 생애 ==
원래는 [[조조]](曹操)의 섬겼으나, [[한중 전투]] 이후 [[유비]](劉備)를 섬긴다.
 
[[228년]] [[마속]](馬謖)을 따라 가정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마속이 제멋대로 행동해 산에 진을 치자 여러 번 간했으나 마속은 말을 듣지 않아 [[장합]](張郃)에게 패배한다. 이때 왕평 휘하의 군사 1천만이 북을 울리고 자리를 지키자 장합이 접근하지 못해 왕평은 흩어진 병사들을 거두어 돌아왔다. 이에 [[제갈량]](諸葛亮)이 왕평을 치하하며 참군(參軍), 토구장군(討寇將軍)으로 승진시키고 오부(五部)를 통솔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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