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액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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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는 이주민과 인디언을 분리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763년 10월 7일, 1763년 파리 조약 후에 영국령 북아메리카를 재구성하기 위해 국왕령으로 1763년 선언이 나왔다. 이 선언은 폰티액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발효되어 있었지만, 봉기 소식이 런던에 도착한 후 서둘러 선언된 바 있다. 영국 정부는 영국의 식민지와 애팔래치아 산맥의 서쪽에 있는 인디언 땅 사이에 경계선을 그었다. 이 결과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미시시피 강 및 플로리다에서 뉴펀들랜드에 이르기 거대한 인디언 점유 영토가 완성되었다. 영국 정부는 이주민이 인디언의 땅을 가로 지르는 것을 금지시키면, 폰티액 전쟁과 같은 분쟁이 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사학자 콜린 캘러웨이는 “1763년 선언은 인디언과 백인의 교류가 아니라 인종 격리를 특징으로 하는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폰티액 전쟁 영향은 오래 지속되었다. 1763년 선언에서 인디언이 그 영토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그것은 인디언의 “권리장전”라 불렸지만, 여전히 캐나다 정부와 퍼스트 네이션 간의 관계에 있었다. 영국 정착민과 토지 투기가들에게 이 선언은 대프랑스 전쟁에서 얻어낸 전리품인 서부의 땅을 부정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이것이 낳은 불만은 식민지들의 영국에 대한 충성심을 약해지게 만들어, [[미국 독립 전쟁]]으로 이어졌다. 콜린 캘러웨이에 따르면 “폰티액 무리의 반란은 독립을 위한 최후의 미국 전쟁은 아니었다. 미국의 식민지 정착민이 수십년 후에 더 확실한 노력을 시작하여, 영국 정부가 폰티액 전쟁과 같은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취한 수단으로 촉발되었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