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요시아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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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요시아키'''({{llang|ja|加藤嘉明}}, [[1563년]] ~ [[1631년]] [[10월 7일]])는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의 무장, [[다이묘]]이다. 이름이 '''가토 요시아키라'''라는 설도 있으며, 다른 이름은 시게카쓰({{lang|ja|茂勝}})이고, 통칭 마고로쿠({{lang|ja|孫六}})이다. [[시즈가타케의 일곱 자루 창]]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 초기 활동 ==
[[에이로쿠]] 6년(1563년)56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 [[가토 노리아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해에 [[미카와 잇코 잇키]]가 발발하였는데, 아버지 노리아키가 잇키측에 가담하고 이에야스를 배신하였다. 이로 인해 노리아키는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고, 요시아키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마침내 요시아키는 [[오와리노쿠니]]에서 [[가토 가게야스]]의 천거를 받아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발탁되어 [[고쇼 (직책)|고쇼]]로 일하게 되었다.
 
== 시즈카타케 전투 ==
[[오다 노부나가]] 사후인 [[덴쇼 (1573년)|덴쇼]] 11년([[1583년]])에는 히데요시와 [[시바타 가쓰이에]] 사이에서 벌어진 [[시즈가타케 전투]]에 참전하여, [[후쿠시마 마사노리]], [[가토 기요마사]] 등과 함께 맹활약함으로써, 시즈가타케의 일곱 자루 창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요시아키는 이후 덴쇼 13년의 [[시코쿠 정벌]], 덴쇼 15년의 [[규슈 정벌]], 덴쇼 18년의 [[오다와라 전투]] 등에서 수군을 이끌고 참전했다. 덴쇼 14년에는 전공을 인정받아 [[아와지노쿠니]]의 1만 5천 석 영지를 받아 다이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