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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The Bulgarian martyresses.jpg|thumb|left|1877년 바쉬바족의 불가리아 여성 집단 강간, 콘스탄틴 마코브스키]]
'''강간'''(强姦)은 [[성폭력]]의 일종이다. 다른 사람상대방(주로 [[여성]])의 신체적 자유를 제압한 뒤, 정조를 빼앗는 행위로 피해자에게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져오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피해자가 여성일 경우 본인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만들어 가정생활에 파탄을 가져오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강하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성범죄 가운데 가장 무거운 중죄(강간죄)로서 국가 권력에 의한 처벌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 강간의 역사 ==
강간이라는 개념의 시작은 [[신화]] 및 [[종교]]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에우로페]] 혹은 [[가뉘메데스]]의 이야기에서는 납치하여 동의를 얻어낸 후 [[성교]]를 하는 강간과 유사한 경우가 있다. [[한국 신화]]에서는 [[동명성왕]]의 부모인 [[해모수]]와 [[유화]]의 전설이 유명하다.
 
강간의 개념의 시작은 신화·종교의 세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그리스 신화에 대해 Zeus와 에우로페 혹은 가뉴메데스의 이야기도 강간에 유사한 합의 후의 성교를 섞은 유괴와 나타내진다.불교에서는 용 이츠키의 투명 인간 강간 사건의 전설이 유명하다.이 설화는 불타와는 대조적으로, 쾌락의 끝에 있는 임계점을 표현하고 있다.
 
 
==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의 강간 ==
성적 폭력은 소수 민족이나 [[노예]], 하층민, 원주민, 난민, 빈곤층 같은 사회적 약자를 향해 행해지거나 형무소나 수용시설, 그리고 전시 때 피정복 국가의 사람들을 상대로 자주 행해져 왔다. 내란이나 전지 상황에서는 대규모 집단 강간도 자주 발생한다. 또, 비전시 상황에서도 권력자 등이 저지르는 성폭력과 관련된 전횡이 있었으며 그 예로 [[중세]] [[유럽]] [[영주]]들의 초야권 등을 들 수 있다.
 
[[고대]] 이래, 다른 [[민족]]에게 정복된 민족, 특히 [[여성]]의 운명은 가혹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몽골 제국]]의 창시자인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일 것이다. 제국의 항복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다가 끝내는 정복당한 도시는 죄다 파괴와 약탈과 살육이 끊이질 않았으며, 여성도 전리품의 일종으로서 제후나 병사들에게 계급이나 전공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강간은 여성의 정조와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에 범죄행위로 간주되었다. 특히 처녀에 대한 강간은 비처녀 및 매춘부에 대한 강간보다 더 중대한 범죄행위였다.
 
[[유럽]]에서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군의 종군에 다수의 여성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아 창녀나 여성 포로가 끌려나와 강간되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크세노폰]]의 그리스인 용병 부대의 성욕 처리의 대상에는 다수의 소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8세기]] 이후 유럽은 나라가 여러 소국으로 분열하여 잦은 전쟁이 일어나면서 군에 의한 강간은 보다 산발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14세기]] 이후 유럽의 각국은 용병을 고용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들 중에 강간을 저지르는 부대가 증가하자 국가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였다. [[백년전쟁]](1337-1453) 무렵에 강간범에게 유죄를 선고한다는 기본적인 방침이 형성되었다.
 
[[근대]] 및 [[현대]]의 전시 상황 아래에 있어서도 각국 군대에 의한 적국 여성의 강간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나치 독일]], [[소련]], [[일본 제국|일본]] 등에 의한 대규모 강간이 있었다. 종전 후에는 피점령 지역에 주둔한 전승국, 특히 소련군 병사들에 의한 일본인 여성이나 독일인 여성에 대한 강간사건이 많았다고 여겨진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군]] 병사에 의해 베트남 여성의 강간 및 매춘 사건이 빈번하여 혼혈아가 다수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