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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년 스페인의 정복자이며, [[푸에르토리코]]의 전 지사 [[후안 폰세 데 레온]]이 왕실로부터 쿠바 북쪽의 원정에 대해 허가를 얻었다. [[1513년]] [[3월 3일]] 200여명에 이르는 원정대를 조직하여, 푸에르토리코의 푼타 아가다를 떠나 플로리다 반도에 도착, 회춘의 샘을 찾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플로리다에는 몇몇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폰세 데 레온은 플로리다를 처음 본 [[1513년]] [[3월 27일]] 그곳을 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4월 2일]] 동북해안에 상륙했다. 스페인의 부활절 ‘파스쿠아 플로리다’에 상륙했기 때문에, 그 땅을 ‘라 파스쿠아 플로리다’라고 불렀다.
 
폰세 데 레온은 1521년에 식민지를 건설을 위해 도구나 이민자들과 함께 이 땅에 돌아 왔지만, 되풀이되는 원주민들의 공격으로 쫓겨나게 된다. 플로리다 내륙의 초기 기록은 살아남은 정복자의 증언에 달려있다. [[1528년]],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가 플로리다의 서해안을 탐사했지만 바다를 통해 멕시코로 빠져나가려다 폭풍 만나고 죽었다. 그 원정대의 장교 중 한 사람이었던 알바르 누네즈 카베자 데 바카는 플로리다에서 멕시코까지 9년간 방랑한 후 생환했다, 스페인 으로스페인으로 돌아와 그 경험을 책으로 간행했다. 이것이 에르난드 드 소토에 따르면 [[1539년]]의 플로리다 침략의 계기가 되었다. 이 원정대의 일원이 이후 플로리다 원주민의 생활양식이나 행동에 대해 세부 사항을 출판했다. 1559년, 트리스탄 데 루나이 아레야노가 [[펜사콜라]]에 개척지를 만들었는데 [[1561년]]에 폐기되었다.
 
프랑스도 플로리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에 스페인 식민지를 가속시켰다. 프랑스인 장 히보가 1562년에 플로리다 원정을 실시했고, 1564년에는[[1564년]]에는 르네 고레네 드 로드네르가 현재 잭슨빌에[[잭슨빌]]에 위그노 이민자의 안식의 땅으로 카로리네 요새를 건설했다. 이에 대응하여 스페인은 1565년에 그 개척지를 파괴하고 현재 세인트 어거스틴에 산 아구스틴 개척지를 건설했다. 페드로 메넨데스 데 아비레스가 건설한 이 개척지는 현재 미국 본토에서 유럽인에 의한 최초의 영구 개척지였다. 여기를 활동의 기지로 삼았다 스페인은 오늘날 미국 남동부에 로마 가톨릭 교회 전도사의 선교를 시작했다.
 
[[1565년]]에 메넨데스 데 아비레스가 카로리네 요새를 습격했을 때, 가톨릭도 아닌 프랑스 수비병을 몰살하고 요새를 산 ​​마테오로 개명했다. 2년 후, 도미니크 드 그루게스가 요새를 다시 탈취, 스페인 수비병을 모두 죽였다. 1586년 영국의 선장으로 때로는 해적질도 하던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산 아구스틴을 약탈하고 불태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