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 콩코드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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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프랜시스 스미스 중령이 지휘하는 700여명의 영국 정규군 병사가 매사추세츠 민병대가 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콩코드의 창고를 확보하여 파괴하라는 명령을 접수했다. 식민지의 애국자들은 이날 몇 주 전에 영국군이 수색을 시도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으며, 군수 물자의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전부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 놓았다. 영국군이 들이닥친 그 전날 밤에도 그 작전 계획의 세부 사항을 입수하고 있었으며, 이 소식은 곧바로 민병대들에게 전달되었다.
 
최초의렉싱턴에서 발포는해가 렉싱턴에서뜨자 일출과최초의 함께총성이 발사되었다울렸다. 민병대는 수적으로 열세였기열세였던 때문에민병대는 이내 철수를 했다. 몇 시간 후 콩코드의 노스 브릿지에 있던 다른 패트리어트 병력이 영국군의 3개 중대와 교전을 벌여 타격을 입혔다. 몇 차례의 야전 전투 후 타격을 입고 수적으로 열세가 된 영국군이 철수했다.
 
민병대는 그 후에도 계속 추격전을 벌여 보스턴을 향해 철수하는 영국군을 쫓아가며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스미스 원정대는 콩코드에서 렉싱턴으로 가는 길에 휴 퍼시가 지휘하는 증원 부대의 지원을 받았다. 총 1,700여명이 된 원정대는 철수 중에도 빗발치는 사격에 노출되었지만, 가까스로 찰스 타운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