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징병거부 폭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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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
[[7월 11일]] [[뉴욕 시]]에서 최초의 징병 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7월 12일]]에 [[게티즈버그 전투]]의 전사자 명단이 발표되었고, 월요일인 [[7월 13일]] 아침 추가 징병 대상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이것이 아일랜드계 빈민들을 자극했다. 이민자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징병사무소와 [[우체국]] 등을 공격했으며, 징병대상자 명단을 불태우고 건물을 무너뜨린 뒤 시가지로 몰려나갔다. 이후 [[맨해튼]] 동쪽 지역은 폭도들이 지배했다. 뉴욕 경찰과 [[메릴랜드]] [[프레데릭크]]에 주둔하고 있던 [[뉴욕시 민병대]](New York Guard)가 투입되었으나 완전히 진압할 수가 없었다.
 
폭도들의 불만은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들에게로 번졌다. 폭동의 원인이 된 [[징병법]]으로 가난한 자들만 군대에 끌려가게 되었다고 불만을 터뜨리던 차에, 자신들의 가난이 흑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폭도들은 흑인들을 공격하여 죽이고 화형에 처하기도 했으며, "[[제퍼슨 데이비슨]]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제퍼슨 데이비슨은 [[남부 동맹]]의 대통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