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점성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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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이것은 주로 그들의 제례 의식에서 나타난다. 먼저 음학의 어떤 상징 하나를 들고 있는 가수가 나아간다. 그들은 반드시 두 가지의 헤르메스 서적을 공부해야 하는데, 그것들 중 하나는 신들의 찬가를 포함하며, 두번째 것은 왕의 생활에 규정이다. 그리고 가수가 손에 시계와 야자나무 그리고 점성술의 상징을 들고 있는 점성술사에게 다가간 후. 그는 반드시 모두 네 권의 헤르메스 서적을 언제나 그의 입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ref>[[#Reference-Roberts|Roberts (1906)]] [http://books.google.co.uk/books?id=yKsL6MsawugC&lpg=PP1&dq=ante-nicene%20fathers%20volume%20II&pg=PA488#v=onepage&q&f=false p.488].</ref>}}
 
[[File:Thema Mundi.svg|thumb|300px|right|[[문디 테마 문디]]]]
== 그리스의 점성술 ==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아시아 정복은 그리스인들을 시리아와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문화와 우주론적 관점에 노출시켰다. 그리스어는 지적 의사소통의 국제 언어로써 쐐기 문자를 추월했고, 그러한 과정의 일부는 쐐기 문자에서 그리스어로의 점성술의 전달이었다.<ref>[[#Reference-Campion|Campion (2008)]] p. 173.</ref> 서력기원전 280년경의 어느 때에, 벨의 사제 베로수스는 그리스인들에게 점성술과 바빌로니아의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서 바빌로니아에서 그리스의 코스 섬으로 이주했다. 그렇게, 켐피온이 부르기를 점성술의 "혁신적인 에너지"가 동양에서 그리스와 이집트의 헬레니즘 세계로 이동했다.<ref>[[#Reference-Campion|Campion (2008)]] p. 84.</ref> 캠피온에 따르면, 동양으로부터 도래한 점성술은 새로운 점성술의 다른 형태들을 지닌 그것의 복잡성이 특징이었다고 한다. 서력기원전 1세기에는 점성술의 주가지 종류가 존재 했는데, 하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정확한 세목을 정립하기 위하여 천궁도의 해석을 요했고, 다른 것은 축어적으로 '신의 일'을 뜻하는 바법의 존재였고, 별을 향한 영혼의 상승이 강조되었다. 그것들은 상호 배타적이 아녔지만, 전자는 인생에 대한 정보를 추구했고, 후자는 점성술이 신과의 대화의 형식으로 역할한다는 점에서, 개인적 변화와 관계가 있었다.<ref>[[#Reference-Campion|Campion (2008)]] pp. 173-174.</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