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골 자치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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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는 [[만주족]]이 몽골족을 복속시키고 1644년 명을 정복한 후 [[청나라|청]]을 세운다. 만주족의 청조는 몽골을 외몽골과 내몽골 등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다른 방법을 통해 통치한다. 일반 몽골인들은 자신의 맹 바깥으로 여행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반면 [[알탄 칸]](1507-1582) 때부터 거주하기 시작하던 한족 농민들이 19세기 후반부터 대량으로 유입된다. 만주족의 중국화와 [[러시아]]의 위협 때문에, 청 정부는 한족 농민들로 하여금 몽골과 만주로 이주하도록 장려하게 되고, 이 정책은 이후의 정부들에 의해서도 계승된다. 이 지역에 건설된 철도는 한족의 이주를 촉진하였다. 토지는 몽골의 왕자들이 매각하거나, 한족 농민들에게 임대되거나 혹은 아예 유목민들의 땅을 빼앗아 한족 농민들에게 주는 방법으로 제공되었다.
 
[[신해혁명]]이 일어난 후 중화민국 시기 동안 [[몽골|외몽고]]는 소련의 도움을 받아 독립할 수 있었지만, 내몽골은 중국의 한 지역으로 재편된다. [[러허(熱河)]], 차하르(察合爾)[[차하얼]], [[쑤이위안(綬遠)]] 등이 신설되었고, [[후룬베이얼|훌룬부이르]]는 [[헤이룽장 성]] 안에 머물게 했다. 중화민국에서[[중화민국]]에서 발행되는 몇몇 지도는 아직도 이 행정구역을 따르고 있다.
 
만주는 1931년부터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훌룬부이르나 지림 맹은 만주국의 판도에 들어있었다. 1933년부터는 러허 성도 만주국에 속하게 된다. 이 지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만주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1937년에는 중화민국과 일본이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몽골의 유력자였던 [[데므치그돈로브]](德穆楚克棟魯普)는 1936년 5월 12일에 만주국에 편입되지 않은 쑤이위안 성과 차하르 성에 몽골군정부(후에 [[몽강연합자치정부]]로 개칭, 이하 몽강국)를 수립했다. 이 나라는 만주국과 일본만 승인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내몽골은 일본의 괴뢰정부가 되었다. 수도는 허베이 성의 [[장베이 현|장베이]]에 설치되었고, 그 통치력은 서쪽으로 [[후허하오터|호흐호트]]까지 미쳤다. 1945년 8월, 팔월폭풍작전(소-일 개전)때에 몽강국은 소련과 외몽고의 군대에 의해 점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