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모 소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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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와 신앙, 난반문화 ===
* 크리스천 다이묘로서도 잘 알려져 있는 소린은 [[덴분]] 20년([[1551년]])에 포교하기 위해 분고를 방문한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Xavier)를 접견하였을 때 기독교를 처음 접했다. 27년 후인 덴쇼 6년([[1578년]]) 7월에 [[세례]]를 받고, [[포르투갈 왕국]]에 친서를 지닌 가신을 파견하였다. 영내에서의 포교활동을 보호하고, 남만무역을 행한다. 또한 하카타 상인 [[시마이 소시쓰]](島井宗室)와 [[가미야 소탄]](神谷宗湛)등과 교우하여, [[명나라]]・[[조선]]과의 무역도 행한다. 그러나 실제로 명・조선과의 무역으로 이익을 본 것은 [[15세기]] 후반까지로, [[삼포 왜란]]을 계기로 적어도 명・조선과의 무역관계는 쇠퇴하게 되어 명의상 오토모 가문의 간판을 이용하고 있던 [[쓰시마]]의 고쿠진과 하카타의 호상들이 실리를 챙기게 된다. 또한 수입품은 식재료와 무기 등 경제・군사적으로 영향을 미칠 만한 물건은 적었고, 대부분은 소위 사치품이어서 그다지 실질적인 이익은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 도야마 미키오(外山幹夫)의 저작 등에서 지적되고 있다. 오히려 소린 시대에는 유력 가신에게 은상으로 내릴 영토가 부족하여, 사찰과 신사의 토지를 몰수하거나 영지 대신에 살구잎 문양(오토모 가문의 문장)의 사용권을 주는 것으로 대신하는 등 경제 상황이 결코 좋지 않았다.
* 덴쇼 10년([[1582년]])에 규슈의 크리스천 다이묘들이 로마에 파견한 [[덴쇼 소년사절단]]에는 [[이토 만쇼]](伊東マンショ)를 대리로 삼아 파견하였다(단, 이 건에 대해서 소린 본인은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도 있다).
* 소린은 영내에서 선교사가 전해준 서양 의학을 기반으로 병원을 세워, 영민을 무료로 진찰 받을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종합병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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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오토모 가문]]
[[분류:기리시탄]]
 
[[en:Ōtomo Sōrin]]
[[es:Ōtomo Sōrin]]
[[he:אוטומו סורין]]
[[id:Ōtomo Sōrin]]
[[ja:大友義鎮]]
[[zh:大友宗麟]]